키가 152센티정도 되는 우리 엄마. 엄마와 내가 옆으로 서면 169센티인 나의 팔이 엄마의 어깨에 걸쳐지는 자그마한 분이다. 엄마는 내가 어깨동무를 하며 귀엽다고 놀리면 씩 웃으면서 어이없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나는 또 그때의 엄마 표정이 좋아 까르르 웃음소리가 터진다.
스무 살 초반의 어느 날에 동네를 조금 벗어나 영화관 앞을 지나갈 때가 떠오른다. 무슨 급한 일이 있었을까? 나와 함께 걷던 엄마가 어느새 다섯 걸음은 더 앞서 나가고 있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나보다 종종걸음을 걷는 엄마가 더 빠르다. 꼬불꼬불한 파마머리에 부드러운 어깨선, 짧은 다리에 조그마한 발. 날쌘 걸음의 자그마한 아주머니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십니까? 나는 부랴부랴 그 걸음을 쫓아간다. 엄마, 엄마, 같이 가!
엄마는 얼른 오라면서 걸음의 속도를 줄이시는 듯하다가 다시 속도를 붙인다. 잰걸음이 점점 더 빨라져 달리는 듯싶을 때 내가 달려가 엄마의 팔을 잡는다. 엄마!
엄마와 나는 또 까르르까르르 웃으며 걸어간다. 엄마는 도망가듯 걷고 나는 놓치지 않으려고 걷는다.
엄마의 속도와 나의 속도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 이내 나는 엄마를 놓아버렸다. 그리고는 엄마의 뒤를 뛰듯이 따라간다. 꿈처럼. 지금은 꿈처럼 그 모습이 움직이는 사진이 되었다.
지금도 엄마의 속도를 쫓아가지 못한다. 이제는 엄마의 걸음이 아니라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엄마는 하루를 열흘처럼 늙어간다. 몇 달이 넘어서 엄마를 만나면 얼굴에 잡힌 주름을 세듯 뚫어지게 바라본다. 엄마가 오랜만에 만난 딸에게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열심히 주름을 세고 쭈글거리는 손등의 검버섯을 노려보며 엄마의 세월을 한탄한다.
나는 엄마를 김여사라 부른다. 아빠가 가시고 더 이상 엄마로 살지 않으시길 간절히 바랐다. 우리 김여사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엄마로 또 할머니로 다시 긴 세월을 보냈다. 내가 아무리 속도를, 내 엄마를 쫓아도 엄마는 자꾸만 저만치 늙음으로 회한을 덮으며 멀어져 간다. 덕분에 나는 나의 시간만큼 늙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