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풍경
지난 시간중에 가장 좋아했던 순간이며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 있는 순간은 아버지가 출근하던 대문 앞의 광경이다. 내가 속해 있던 순간이지만 지금은 3인칭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 찰칵!
우리 집의 하루 일과는 아침마다 아버지가 크게 틀어놓는 음악과 함께 시작되었다. 졸음에 취해 눈이 떠지지 않는 내게 그저 소음이었던 그것. 어떤 음악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싫은 것 중의 하나였다. 음악을 틀어 두고 엄마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아버지는 자식들을 깨웠다.
겨우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치치치치 밥이 되는 소리와 또깍또깍 하이힐로 걷는 여자의 발걸음 소리와 비슷한 도마소리가 음악소리와 뒤섞였다. 찡그린 얼굴을 하고 거실로 기어 나오는 건 언제나 내가 처음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배가 고팠다. 배고파... 중얼대며 거실에 드러누우면 아버지는 그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여보, 얘 배 고프대? 얼른 밥 줘라.
배 고프대요? 엄마가 말한다.
치익- 소리가 나고 밥이 다 된 소리가 들리면 다시 잠이 들었던 듯싶은 내 앞에 방금 긁어 접시에 담은 누룽지가 놓여 있었다.
뭐 그렇게 배가 고프냐?
아버지는 머리를 쓸어주면서 누룽지를 더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나와 아버지와 엄마의 아침 대부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버지의 출근
아버지는 깔끔하고 단정한 신사였다. 2대 8 가르마가 기계로 가른 듯 깔끔한 헤어스타일은 흐트러짐이 없었고 엄마가 빳빳하게 다림질한 셔츠와 양복바지는 언제나 칼주름이 잡혀 멋스러웠다. 엄마는 겉모습만큼이나 속도 단정해야 한다며 아버지의 속옷까지 다림질을 하는 분이었다.
아버지는 여덟 시경이면 출근을 하셨다. 학창 시절에는 아버지의 출근길을 배웅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아버지의 출근길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버지가 출근준비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설 때쯤이면 엄마는 하던 일을 멈추고 종종걸음으로 아버지의 뒤를 따라나섰다.
그 뒤를 내가 따라나섰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아버지는 꼭 마당 여기저기를 살피며 범인을 찾는 수사관의 눈빛으로 잡초나 수리가 필요한 곳은 없는가를 훑어보았다. 아버지의 걸음이 드디어 기울어진 땅을 타고 내려가기 시작하면 엄마와 나는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를 했다. 엄마는 항상 '여보'라는 단어를 잊지 않았다.
'여보, 다녀오세용 -'
맑은 엄마의 목소리가 골목길을 나서는 아빠의 뒤를 따라 굴렀다. 골목 끝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엄마와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그곳의 내리막길에는 뒷짐 지고 팔자걸음으로 걸어 내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방실방실 웃으면서 남편을 배웅하는 아내의 모습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흐뭇한 딸의 모습이 타투처럼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