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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Sep 06. 2024

산책, 봄 2024

날은 왜 이렇게 좋고 벚꽃은 왜 이렇게 흐드러질까. 봄볕에 드러난 벚꽃이 사방천지에 난개하다. 옷자락을 흔드는 벚꽃에 눈이 팔려 가로수길을 걷다 보니 가지 끝에 백옥의 여신처럼 피어있던 목련이 꽃잎으로 떨어져 누워있다. 결국 자연의 섭리를 거스리는 건 꽃이라도 안되는구나.


밟기에도 미안해 길을 돌아 걷는다. 목련이 지니 아빠 생각이 더 가슴을 파고 들어온다. 목련이 피었을 때는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네모난 세상에 그 아름다움을 담고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지는 꽃을 보고 불현듯 아빠 생각에 빠진다. 참 언제나 느닷없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빠와 산책 한 번 한 일이 없었다. 아빠가 눈물을 흘리며 동네 한 바퀴를 걸을 때 그 등에 내가 업혀 있었으니 그것도 산책이라면 산책이 될까. 그때 나는 아빠의 마른 어깨와 등에 바짝 붙어서 흘리시는 눈물이 손등에 떨어질 때마다 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삶의 애착 때문에 더 아빠를 움켜잡고 매달려 업혀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의사는 수술 후에도 호전이 안 되는 나를 이미 포기하고 병원에서 내보냈다. 아빠의 한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아빠는 산책을 다니실 만큼 한가한 때를 살지 못했다. 잠시 쉴틈이 생기면 글을 읽거나 신문을 펼쳤다. 나는 종종 아빠, 엄마가 일을 마치실 때까지 함께 있다가 퇴근을 함께 하곤 했는데 날씨가 좋은 날에는 언제나 걸어서 집까지 갔다. 그 시간을 참 좋아했다.


가는 동안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무엇보다 아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 언제나 꽃 한 송이 맑게 볼 수 없는 어두운 길을 걸어갔지만 내 마음은 낮보다 더 환했다. 함께 걸었던 그 순간도 산책이라 우기면 산책이 될까. 


아빠는 암으로 돌아가시기 얼마 전까지도 당신의 일을 접지 않았기 때문에 늘 실내에 갇혀 있었다. 아빠가 쉬게 되었을 때는 누워 계시는 게 일상이 되어 함께 걷는 순간은 어느 날이 마지막이 되었는데,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날은 기억 속에서 멀어졌다. 나는 혼자 걷는 산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요즘은 꽃들이 무성하게 피어 자꾸 발길이 머무르게 되어서 외출하다 돌아올 때면 동네 한 바퀴를 걷게 되었다. 


한 번도 아빠와 아름다운 꽃길을 걸어본 적이 없는데 이상하게도 혼자 걷다 보면 자꾸 아빠 생각이 난다. 벚꽃이 바람에 날릴 때면 가슴이 뭉클해져 한 번씩 시야가 흐려질 때가 있다. 아빠는 벚꽃 흩날리는 봄을 한 번이라도 느긋하게 걸어 본 적이 있었을까… 아빠가 보고 있다면 서로가 너무 그립고 애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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