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쓰 Aug 23. 2024

2024년 봄에-꽃과 추억

아쉽게도 집 근처에는 꽃집이 없다. 꽃을 사려면 운전을 해서 지하철역 근처나 백화점으로 가야 한다. 요즘은 주로 백화점 지하 1층에 있는 꽃집을 자주 가는데 오픈된 공간에 음식냄새가 여기저기 들러붙어 꽃향기가 없는 꽃집 같다. 처음에는 조화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지금도 꽃을 고르면서 바짝 고개를 숙여 일부러 꽃향기를 맡아보곤 한다. 


봄이 되니 꽃 이야기도 많고 사진도 많이 보인다. 눈이 내렸다는 지역도 있고 비가 내렸다는 지역도 있고 겨울인지 봄인지 혼란스러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어느새 봄이 와있었나 보다. 봄은 언제나 꽃소식과 함께 시작된다. 뉴스에서 개화시기가 어떻고 기온이 어떻고 얘기해도 주변에 꽃이 보여야 봄이구나 하게 된다. 


어제 아침부터 햇살이 남달랐다. 찬 바람은 아직 숨어들지 못했다. 햇살이 뿜은 따스한 온기로 봄이 왔구나 짐작했다. 볼 일이 바빠 서둘러 움직이는데 콧노래가 저절로 났다. 집에 돌아올 때 보니 102동 붉은 담옆에 목련이 화사하게 개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다 말고 차를 되돌려 백화점에 있는 꽃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는 무슨 꽃을 살까 온통 꽃 생각뿐이었다. 사실 어떤 꽃이든 상관없었지만 어릴 때 추억이 담겨있는 개나리가 생각나면서 머릿속이 온통 노랑이 되었다. 


열 살 때인가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내 키 반정도 되는 개나리 가지를 주웠다. 그때 집에는 가로로 길고 야트막한 작은 뜰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아이보리 큰 꽃을 피우는 목련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몇 가지의 식물이 더 심어져 있었다. 목련을 제외한 나머지는 꽃을 피우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마도 개나리꽃을 피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꺾꽂이로 번식하는 꽃인지는 모른 체 집에 돌아와 해가 잘 드는 곳에 그 개나리 가지를 깊숙이 꽂고 물을 조금 부어주었다. 어느 날 목련 주변은 샛노랗게 물들었다. 부모님은 달가워하지 않으셨던 걸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노랑밭이 되어버린 건 우였 이었을 뿐 내가 꽂은 한 대의 개나리 탓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꽃집입구에는 여느 때와 같이 화려한 장미 떼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행히 좋아하는 검붉은 장미가 보이지 않아 시선을 빼앗기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싱싱한 프리지어가 나를 보고 웃었다. 역시 노랑이지. 고민 없이 네 단을 달라고 했다. 손에 쥔 상태를 보니 너무 초라한 느낌이라 네 단을 더했다. 초록잎과 섞으면 작은 화병에 적당히 꽂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더 화사하게 보고 싶어 또 네 단을 더했다. 


포장하느라 꽃을 흔들 때마다 살짝살짝 향기가 퍼졌다. 달짝지근하고 은은한 프리지어향이 오는 내내 차 안에서 한들거리고 지금은 거실 원탁 위에서 바람이 밀려들 때마다 향을 더 진하게 풍기고 있다. 나의 집에도 마침내 봄향기가 물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