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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Aug 17. 2024

시간의 선물

아지랑이처럼 물안개처럼 삶이 지나가는 길 중간중간에 발자취를 남기는 개인사의 조각들을 주워 담아본다. 정체가 드러나 궁리할 것도 없는 그저 기억의 파편인 무의미한 것들이 더 많은 과거에 뒤흔들리는 것은 때때로 던지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감정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추억이 있는 탓이다.


부끄러운 기억들을 삼키며 잠을 설치는 어느 날에 현재의 불안함이 겹쳐지면서 그때의 나를 탓하기도 하지만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발끝을 들고 넘겨 보겠다고 기를 쓰기도 한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어느 노래의 가사처럼 지혜롭게 현재에 이르기를 언제나 바라왔다. 지나간 시간이 내 현재와 미래의 발목을 잡지 않기를 애써 걸어왔다. 후회라는 어리석은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고 소중한 것들을 걸러내는 과정은 역사학자들이 승자의 편에서 역사서를 써내듯이 편파적으로 흘러가지만 그 정도의 가식은 받아들인다.


나란 사람이 어떻게 존재해 왔느냐의 나열은 바꿀 수 없지만 추억은 참 잘 개조되고 왜곡된다.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기억이 맞는지 가끔 의아심을 갖게 된다. 1998년 겨울 녹색의 깡통밴이라 불리던 차, 눈부시게 하얀 눈이 무릎까지 쌓이고 손이 꽁꽁 얼도록 끌어모아 둥글게 만들던 눈덩이, 까만 밤 희미한 가로등과 아무도 지나가지 않던 뉴저지 어딘가의 길 위. 어느 때까지 선명했던 기억이지만 이제는 다른 날의 기억과 뒤섞여 있는 듯한 내 기억이 아닌 기억 아니, 추억.


시간이 내게 선물하는 유일한 것은 그 아무것도 아닐지 모를 추억이 전부일지 모른다. 내 영혼을 성숙시켜 가는 건 지금이 아닌 과거의 어느 순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태어난 해부터 나는 지금까지 한 순간도 빠지지 않고 살아왔는데 생각해 보면 어느 시점에는 내가 없었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어렴풋이 모르는 점자를 읽는 느낌이다. 그래서 추억 속에 모든 것이 있지는 않다.


오늘이 어떻게 남을지는 오늘 모른다. 다만, 또 과거의 여느 때처럼 살아갈 뿐이다. 내일 남겨질 것들에 회한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실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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