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쓰 Oct 04. 2024

기와집

아버지와 함께 걸어가는 논두렁 길은 좁고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럼에도 왼쪽 저편으로 보이는 마을이 가깝게 느껴지는 길이었다. 아버지는 여느 때와 같이 말없이 나를 뒤따르게 한다. 나는 굳이 아버지에게 목적지를 묻지 않고 발자국 위에 발자국을 올리며 조심스레 쫓아간다.


휘어지는 산길을 돌아 돌아 희한하게도 무엇인가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 드는 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아버지는 프랑스에서 돌아와 새로운 암치료제가 개발되어 완쾌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기뻐하셨다. 너무나 살고 싶으셨구나... 가슴속에 기쁨과 안쓰러움이 소용돌이쳤다.


우리 가족은 모두가 부둥켜안고 아이처럼 방방 뛰며 기쁨을 표현했다. 아버지는 기쁜 소식을 가족에게 전한 뒤에 내게 어디를 좀 가자고 말씀하셨다. 그 길로 따라나선 길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길, 난생처음 걸어보는 길을 아버지는 능숙하게 달리듯 걸음을 하셨다. 어느 만큼 걸었는지 모른다. 다다른 곳에 구중궁궐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넓고 조용한 기와집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처음이 아니라는 듯이 익숙하게 문을 열어젖히며 마름을 불렀다.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마름이 냉큼 쫓아와 아버지께 오셨냐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구석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 아이의 얼굴은 처음부터 잘 보이지가 않았다. 마름은 아버지와 나를 오래된 대들보가 든든하게 서있는 집의 중앙으로 안내했다. 


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서 정면을 응시하며 섰다. 내게도 올라와서 앞을 한 번 보라고 말씀하셨다. 막힘이 없이 뻥 뚫린 시원한 하늘과 푸른 나무가 좌우로 뻗어있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고 나는 어리둥절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우리 집이란다. 우리가 다 함께 살아갈 집. 걱정할 게 하나도 없단다."


나는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한번 풍경을 바라보고 뒤를 돌아 집을 둘러보며 "아버지" 하고 불렀다. 아버지는 웃으셨고 나는 불안해하며 눈을 떴다.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나는 그제야 울분을 토해냈다. 그랬다. 그 순간의 감정은 슬픔도 괴로움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지켜 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분노였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아버지의 인생은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다면 나는 그 애절한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뜻이며 사랑이고 세상의 연줄임을 깨닫던 때에 내 가족과 그 기와집을 짓겠다고 결심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