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들어가자마자 병원생활을 하게 되면서 학교를 일 년 쉬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드나든 곳은 도서관이었다. 병상에서 일어났지만 학기 중간에 들어갈 수 없어서 쉬게 되었었다. '홀로 생활'이 시작되었다.
중학생이 학교 대신 낮시간에 갈 곳이 마땅찮았다. 공부를 하겠다고 교과서를 들고 도서관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공공도서관이 집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사실 혼자 공부해 보겠다고 책을 들고 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도서관에서 내가 한 일은 책을 빌려 보는 거였다.
그때 정말 많은 책을 읽었던 거 같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그때 읽지 않았을까 싶다. 한참 감성이 풍부한 나이에 병치레를 하며 홀로 남아 있는, 13세의 여학생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어준 책 덕분에 외로움은 덜어졌을 테다.
부모님은 내 하루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다. 특별히 말썽을 피울 딸도 아니고, 무덤 앞에서 건져 올린 딸이니 그저 건강하게만 있어주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엄마가 늦게 출근하시는 날이나 동네에 일이 있는 날에는 당연히 늘 나를 먼저 챙겼다.
간식도 해주고 동네 행사가 있으면 불러 밥도 먹이고. 그때 엄마가 동네 통장으로 바빴던 걸로 기억된다. 아무튼 내 대부분의 한량 세월은 도서관에서 흘러갔다.
나는 도서관 가는 길이 좋았다. 대로가 아닌 집과 집 사이의 갈랫길로 다녔는데 도서관까지 가는 동안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신이 났다. 칸막이로 되어 있는 도서관의 책상 앞에 앉으면 특유의 나무 냄새와 책 냄새가 코를 훑고 지나갔다. 그 냄새가 좋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냄새에 익숙해져 더 이상 처음 같은 기쁨으로 맡을 수는 없었지만 그때는 이미 읽고 있는 책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책을 읽다 보면 아주 가끔 이웃집 오빠가 아는 체를 했다. 나는 그 오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그 오빠가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그 오빠는 음료수라도 한 잔 사주고 싶어 했던 건데 나는 짜증을 냈다. '아는 체하지 마!' 참 못됐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도서관을 채웠던 인쇄물 냄새와 그 동네 오빠의 불편했던 친절함이 동시에 생각난다. 도서관은 여전히 거기에 있지만 그 오빠가 동네를 떠난 지는 오래되었다.
학교를 다니지 못했던 일 년. 책으로 나를 채웠던 그 일 년 이후에 나는 책을 읽지 않았다. 아마도 책을 읽었던 건 외로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