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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나쓰 Oct 17. 2023

고모의 꿈

큰 조카는 공부에 취미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좋아하는 과목과 싫어하는 과목의 점수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공부에 흥미를 붙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아이는 내게 특별하다. 태어나서 얼마 되지 않아 제 엄마의 직업 때문에 할머니 손에 길러졌는데 그때 마침 내가 부모님과 같이 있었기 때문에 조카를 함께 기르는 시간이 있었다. 조카는 온 동네 어른들께 90도 각도의 예쁜 인사를 하고 다니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꼬맹이는 이제 중학교2학년의 얼굴 작고 호리호리한 예쁜 소녀가 되었다. 명랑한 아이였는데 이제는 조금 새침한 소녀가 되었다. 요즘은 조카가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안 되는 공부 하랴 야단맞으랴 조카는 힘들다. 자존감에 상처 입지 않기를 바란다.


같이 얘기할 시간이 있을 때면 조카의 친구나 취미, 꿈에 대해 궁금해하고 질문을 많이 했다. 정작 조카는 하고 싶은 것도 없고 꿈도 없다고 망설임 없이 말하는데 내 마음이 급했다. 자신감 있는 조카의 대답을 생각하면 오히려 마음이 놓일 일인데 말이다. 전에는 조카에게 꿈에 대한 얘기를 유독 많이 했다. 꿈이 없냐, 왜 없냐, 생각은 해봤냐 그런 꼰대 같은 말을 늘어놓던 어느 날 순간 멈칫했다. 그리곤 "없어도 괜찮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라고 말해버렸다. 조카에게 당장 꿈을 꾸어야만 한다는 부담감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잔소리였다.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오랫동안 꿈이 없었다. 어릴 때 학교에서 꿈을 적어내라고 하면 의사나 간호사라고 했었다. 의사나 간호사가 나의 꿈이 될 정도로 접한 적이 없었는 데도 말이다. 아마도 남의 꿈을 따라 적거나 생각나는 대로 적어낸 듯한다.


그러던 나도 몇십 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야 꿈을 꾸는 사람이 되었다. 특별한 꿈을 꾸지 않았다고 열심히 살지 않은 적도 없었고 희망을 놓은 적도 없었다. 느지막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생기고 그것이 작가라는 꿈이 되었고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어 오늘도 글을 쓴다. 꿈을 키워간다.


어차피 꿈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멈춰지는 것이 아니다. 더 일찍 원하는 것을 찾고 이룬다면 좋겠지만 어차피 그 꿈을 이루고 나면 다른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은 노년에 찾아올 수도 있는 일이다. 노년에 연인을 만나 사랑을 꿈꾸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제는 그저 조카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봐 주는 고모가 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그 아이의 대단함이 나날이 새롭게 보인다. 실제로 그 아이는 그림도 잘 그리고 수영도 꽤 잘하는 편이다. 기본적으로 골프부터 스키까지 운동 잘하는 몸이 장착된 아이 같다. 언젠가는 조카도 첫 번째 꿈을 꾸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인생의 하나뿐인 꿈이 될지 다른 꿈의 징검다리가 될지는 모른다. 다만, 고모의 마음은 여전히 조카가 멈추지 않고 꿈을 꾸면서 살기를 바란다. 그 아이의 꿈이 우주가 아니라도 좋다. 한 송이 들꽃이라도 좋다.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좋은 꿈을 많이 꾸길 바란다. 그렇게 언제나 빛나는, 밝은 어른으로 성장하여 노년에도 꿈을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생각이 먼저 담겨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당신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 펜대를 들기도 하죠.

진심을 담아 짧은 글과 그림을 올려 봅니다.”


일러스트: @bona2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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