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알폰스 무하의 여신들

무지한 관람자의 미술관 가는 길

by 보나쓰
IMG_1030.jpeg

‘체코슬로바키아의 첫 번째 우표는 무하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나는 그의 단단한 성향과 정치적 신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히틀러 정부에 저항했던 예술가였고, 조국을 위해 그림을 그린 화가였다. 성향, 의지, 세상을 향한 시선이 맘에 들어 좋아하는 화가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무하가 그린 신화 속 인물 같은 여인들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아르누보풍의 그림을 그린 무하의 화폭에 담긴 여인들은 하나같이 꽃처럼 화사하게 빛난다. 배경은 다르지만, 얇고 부드러운 옷감을 걸치고, 육감적인 선을 따라 포개진 몸짓. 알 수 없는 표정을 띤 그 여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한 것은 아주 엉뚱한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무하는 모델들을 얼마나 사랑했을까?' 사랑이라는 화두는, 정말이지, 내 인생에 끊임없이 던져진다.


오늘은 몹시 습하고 무더운 날이었다. 나는 아침 일찍 영양제를 챙겨 삼키고, 샤워를 마친 뒤 전시회를 보러 갈 준비를 시작했다.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한 탓에 눈꺼풀 위로 피로가 겹겹이 쌓여 있었지만 전시를 보고 나면 그깟 피로쯤은 말끔히 씻겨나갈 걸 알았다.

IMG_1014.jpeg

예매 정보를 찾기 위해 들어간 사이트에서, 나는 한 여인의 시선을 마주쳤다. 붉은 꽃 화관을 쓰고, 살짝 은밀하고 요염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는 무하의 여인. 망설임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오래전에 알았던 C가 떠올랐다. C는 일렉트릭기타를 치는 연주자였다. 그의 머리카락은 탈색과 염색을 반복한 탓에 바스러지고 있었고 깡마른 몸이 늘 노인처럼 구부정했다. 그가 기타를 등에 지고 들어올 때면 나는 마른 가지가 흔들거리며 바람을 밀어내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체코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무하가 사랑했던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향기를 체코에서 맡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전시회 벽면에 적혀 있던 베르나르에 대한 설명을 잠시 인용한다.

IMG_1023.jpeg
사라 베르나르는 19세기 후반 벨 에포크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연극배우로, 당대 최고의 비극 여배우로 명성을 떨쳤다. (중략)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이후에도 연기를 계속할 만큼 강한 예술적 열정을 보였다. 그녀는 풍부한 음성과 극적인 표현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아 ‘신성한 사라’와 ‘극장의 황후’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빅토르 위고는 그녀를 위해 희곡을 집필했고, 화가 알폰스 무하는 그녀의 연극 포스터를 제작하여 아르누보 예술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


나는 왜 C가 파리가 아닌 체코를 택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말실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C만큼 사랑을 갈망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랑을 하면서도 늘 사랑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그가 의아했다. 그는 어떤 여자의 ‘두 번째 남자’로 살기도 했다. 그 여인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사귀는 남자가 있었고, 가끔씩은 두 번째 남자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기꺼이 그는 그녀의 두 번째 남자로 살기를 선택했고, 그 선택 아니 마음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할 때, 그의 눈빛은 빛나고 따스했다. 어느 날에는 조금 불안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런 날에도 그는 여자에 대해 함부로 말한 적 없으며 오히려 가엾게 여기기까지 했다.


사랑을 정의한다는 건 도덕성에 취한 세상의 잣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무하는 상업적인 그림을 많이 그렸지만 그의 여인들은 모두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처럼 보인다. 여인들의 우아함은 어쩌면, 말 못 할 천박함을 깊숙이 숨긴 대가로 얻은 절제인지도 모른다.


C의 소식은 내가 일하던 직장을 떠날 무렵 끊어졌다. C가 말하던 사랑을, 나는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어 비판한 적 없지만 나 역시 내 안 어딘가에서는 그의 사랑을 퇴폐적이라 여겼고 또 한편으로는 낭만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건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만 C가 자신의 연인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던 그날, 그의 눈빛에 담긴 오묘한 흔들림을 나는 사랑이라 확신했던 거 같다. 나는 사랑을 몰랐던 십 대보다 요즘 더 사랑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무하의 여인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생각했다. 그 앞에서, 내가 얼마나 복잡한 감정과 나란히 서 있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다시 확인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세기말의 유럽에서 일어난 특수한 미술 사조이다. 1890~1910년 사이의 '세기말'에 유럽과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유행한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한 양식이다.
아르누보는 자포네스크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다. 아르누보 하면 연상되는 대표적인 특징들은 대상을 최대한 똑같이 묘사하는 서양화 전통에서 벗어나서 마치 우키요에의 동양화적 특징처럼 평면적인 느낌에 간략화된 묘사로 공간을 다양한 방법으로 채우는 기법이다.
아르누보는 프랑스어로 직역하면 '새로운 미술'이란 의미이며 주로 영국과 벨기에에서 사용한 말이고, 독일은 유겐트 양식(Jugendstil), 이탈리아에서는 리버티 양식(Stille Liberty), 프랑스는 기마르 스타일(Style Guimard)로 불렀다. 대표 작가로 오브리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에드워드 번 존스(Edward Burne-Jones), 구스타프 클림트 등의 작가가 있었다.
keyword
이전 04화마르크 샤갈의 당나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