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관람자의 미술관 가는 길
이탈리아를 가야겠다고 해마다 생각하고 해마다 잊으면서 지나왔다. 친구와도 몇 번이나 같이 가자고 말이 나왔었지만 우리는 한 번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여름이 되고 햇살이 뜨거워지니 다시 이탈리아를 가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에 '이탈리아 국립 카포디몬테 미술관 19세기 컬랙션, 나폴리를 거닐다' 긴 제목의 전시가 마이아트뮤지엄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읽었다. 19세기의 나폴리란 얼마나 낭만적인가. 예매를 하고 기다려 드디어 오늘이 되었다.
카포디몬테 미술관은 나폴리에 위치한 이탈리아 남부 최대 규모의 국립 미술관이다. 나폴리에 가면 꼭 들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다. 그러니 이 번 전시는 내게 굉장한 행운인 셈이다. 이 번 전시에서는 사회성이 반영된 다양한 여성상과 패션,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풍경화와 당시의 실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나폴리를 보고 죽어라'라고 할 만큼 나폴리에 감탄했다고 한다. 19세기 이탈리아 남부의 풍경과 서민, 귀족들의 형상을 만나고 뤼미에르 형제의 영상 속 나폴리를 보고 나오면서 가지 못한 여행의 아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첫 여인의 초상은 프란츠 폰 랜바흐의 '마리아 슐리에의 초상'이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부드러운 눈매, 귀족여성을 그린 것으로 종이 위에 파스텔 작품이었다. 시간에 따라 창백해진 여인의 초상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 마음 가까이 다가왔던 작품들은 공포와 슬픔, 비애의 표정이 드러나 있는 여인들의 그림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래 작품은 빈첸조 부시콜라노의 작품으로 제목은 '가엾은 사포'이다. 고대 그리스의 여류 시인 사포를 중심으로 한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사포가 절벽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의 비극적인 순간을 재현했다고 한다. 넋을 놓고 있는 듯하면서도 머리장식을 하고 손거울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 역설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중산층 여성들도 꽤 여유롭고 우아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다음 그림은 꽤 인상적이었던 작품으로 남다른 패션감각의 여성이 왼 손에 부채를 들고 무언가를 내려다보고 있다. 안쪽에 있는 남자의 표정이 흥미롭다. 이 작품은 자코모 파브레토의 '부채를 든 소녀'라는 그림이다.
다음 작품은 조반니 볼디니의 '공원산책'이라는 작품으로 내가 가장 맘에 들어한 작품이다. 가을의 쓸쓸함과 황갈색의 공기가 느껴지는 다소 공허한 들판과 상반되는 여성의 모습. 퍼를 걸치고 두 마리의 개와 함께 걷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단아하고 멋스러 보인다. 손에 부채 같은 것을 들고 치맛자락을 살짝 들고 걷는 걸음걸이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맑고 흰 햇빛이 쏟아지는 나폴리의 풍경을 보며 전시장을 떠나면서 내 년에는 아니, 가을에는 꼭 이탈리아를 아니, 나폴리를 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작품을 통한 환상에서 비롯한 여행이 되겠지만 그 정취를 가슴속에 품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