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될 무렵부터 열을 동반한 코감기로 하루 종일 머리가 지끈 거리고, 약에 취해서 흐릿해진 열흘을 보내고 있었다. 산불피해로 힘들었던 산청군을 포함한 남부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뉴스를 틀면 산사태, 물 위로 떠다니는 자동차, 흙더미에 휩쓸린 삶의 흔적이 화면에 가득 차는 우울한 날들. 하늘은 내내 슬펐고 땅은 무너져 내렸다. 약에 졸음을 부르는 성분이 많았는지 하루 종일 소파와 침대에 번갈아 가며 누워 잠만 자는데도 감기는 나을 듯 나을 듯 떠나질 않았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치고 대통령이 비피해 지역을 돌며 피해접수와, 사고 등의 보고를 듣고 대책을 마련하는 뉴스로 폭우소식이 바뀔 때쯤 나도 몸을 좀 움직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봐둔 전시회 리스트를 열어 보니, 대부분 8,9월에 시작되는 것들이었고 8월에 끝나는 미셸 들라크루아의 전시가 있었다. 화면을 스크롤해서 내려가며 안내문에 있는 파리의 모습들을 보다가 이제 90세가 넘은 노화가의 눈에 보이는 파리는 여전히 아름다운가 라는 생각에 머물렀다.
마침, 약속이 생긴 친구의 티켓을 하나 더 예매하고 이틀 뒤에 전시가 열리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10층 문화홀로 향했다. 전시관 앞에는 미셸의 '시청에서의 결혼식'이라는 작품이 벽면에 크게 그려져 있었다. 전시회의 제목은 미셸 들라크루아 특별전 영원히, 화가.
비염인가. 불편한 콧속이 내내 신경이 쓰여 전시회를 보기도 전에 피곤한 몸을 끌고 어둑한 입구의 커튼을 열고 들어섰다. 나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한다. 실외의 공기가 완전히 차단되고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드는,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첫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 번 전시는 작가의 50대부터 90세가 넘은 현재까지 45여 년 전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림 속에는 전쟁 이전 파리의 모습이었을 듯한 따뜻하고, 화려하면서도 생기가 넘치는 아름다운 시절이 가득했다. 재밌었던 건 대부분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한 마리의 개였다. 파리 최고의 랜드마크 에펠탑이 노을이 지는 파리의 배경을 등지고 하얗게 빛나고 있는 그림이나 불빛이 대낮처럼 빛나는 밤거리의 파리를 즐기는 신사와, 커플들 사이에도 몸집이 마른 개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1941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파리 근교의 이보르라는 마을에서 피난 생활을 하며 유년기를 보냈던 미셸은 겨우 일곱 살이었고, 가장 행복한 시절로 기억한다고 한다. 마르크 샤갈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당나귀를 떠올리며 미셸의 그림 속의 개 역시, 샤갈의 당나귀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점이라면, 미셸의 개는 항상 행복한 시점에 있다는 거다. 그 행복한 시절이 항상 현재로 느껴지며, 그림 속의 파리를 '행복한 파리'로 박음질했다. 어두워진 마을 어귀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키스를 하는 남녀의 모습을 배경으로 꼬리를 치고 있는 개는 파리의 사랑과 낭만을 더 따뜻하게 만들었다. '시청에서의 결혼식'과 '행복하세요'라는 결혼식 장면이 담긴 그림 속에서의 개는 실상, 결혼식과는 관계없이 먼 거리에서 뛰어가고 있었지만 축복이 가득한 날의 웃음소리와 생기를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미셸은 파리만큼 파리의 사람들을 좋아했던 거 같다. 그가 그리는 파리에는 언제나 한 쌍의 커플이나 아이들, 가족이나 개와 함께 걷고 있는 신사, 눈보라를 뚫고 달리는 우체부 같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림을 보는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 태생의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칼라 부르니의 노래를 떠올리며 그들과 함께 들떠서 그림 속의 파리를 걸었다. 전에는 파리지앵이라는 단어가 뉴요커라는 단어만큼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뉴욕생활을 오래 한 뒤로는, 파리지앵에 대한 환상만이 남아있는 상태지만.
미셸의 그림은 환상이 아니라 현실 속의 파리와 사람들을 행복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를 우아하게 걸으면서 가끔은 장난스럽게 회전목마를 타기도 하고 개와 함께 얼음을 지치기도 했다.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을 훔쳐보면서 석양에 물든 빛의 도시 파리의 몽마르트르 언덕에 앉아 있었다.
한껏 행복해진 가슴으로 전시장을 빠져나오면서 하얗고 빛나는 꿈 속에 살다가 튕겨져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 우리가 열심히 사는 건 행복한 회전목마 위에서, 주변을 자유롭게 뛰어노는 개를 벗 삼아 한껏 웃는 순간을 위한 게 아닐까. 다음 생애에도 자신은 영원히, 화가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다는 노화가 미셸의 다음 전시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