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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부르주아 : 덧없고 영원한

행복한 관람자의 미술관 가는 길

by 보나쓰

전시의 제목은 부르주아의 글로부터 나왔다. 전시장 입구에 적혀 있던 작가의 글을 시작으로 관람기를 적기로 한다.


닫힌 세계, 그 경계를

나는 보고 통제할 수 있다 -

그 안에서 나는 안심한다.

삶은 내 곁을 스쳐 지나가고 있는가?

그게 두려움이 하는 일이다 -

찰나와 + 영원의

거리를 설정하는 것

덧없고 + 영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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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에 들어서면서 마주한 첫 그림의 제목은 '도망친 소녀(The Runaway Girl)이었다. 이 그림이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시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소녀는 아니면, 부르주아는 무엇으로부터 달아났는가?


"자살 협박"이라는 제목의 종이 위에 수채와 잉크로 그려진 사랑에 대한 작품은 충격적이었다. 작품은 혈서를 연상시켰다. 붉은색으로 'I love you do you love me'라고 적혀있었고 그 옆에는 칼 한 자루가 있었다. 커다란 휠 앞에 놓여있는 하반신. 그녀의 글이 그 벽면에 적혀 있었다. ' 내 칼은 혀와 같다 - 사랑해, 미워해.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곧바로 공격할 거야. 내 칼은 양날을 갖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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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으로 걸어 들어 갈수록 그녀의 작품은 여자 아니, 어머니에 집착하고 있었다. 배가 불룩한 조각상들이 있었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왼팔이 잘려 있는 목발을 짚은 어머니의 다리에 아이가 자신의 어머니인듯 보이는 여인에게 매달려 있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을 보는 순간 울컥하는 눈물을 삼키느라 입을 틀어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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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의 작품세계에는 불완전한 신체가 많이 나온다. 결손, 부재, 불안, 결핍, 상실 등의 이미지를 표현하려 애쓰지 않았나 싶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어머니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한없이 그립고 안전함을 찾는 욕구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불완전하면서 자신을 버려두었고 돌보지 않았던 약하고 원망스러운 존재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머니를 거미와 같은 존재라고 불렀고 이는 부르주아의 대표작인 <마망> 시리즈로 이어진다고 한다. 전시관 안쪽에서는 그녀의 행위예술이 필름으로 보이고 있었는데 그 속에서 부르주아는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대형 거미가 중앙에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된 작품 중에는 꽃이 그려진 작품들이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꽃'만이 그녀를 치유하는 영역에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둥근 모양의 꽃은 여성 자체를 의미하는 듯도 보였다. 부르주아의 붉고 단조로운 꽃은 불안하면서 애처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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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에게 어린 시절과 가정은 그리 평안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기억이라고 느껴지지 않았지만 결국 벗어날 수 없는 곳이었고 안타깝고, 위태롭지만 머물고 싶었던 곳이었나 보다. 그녀가 쓴 글을 마지막으로 적는다.


I had gone back to

Antony with my children

to see the house where I had grown up

and where the river Bievre floed

through the backyard.

But the river was gone.

Only the trees

that my father had planted

along its edge

remained as a witness.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내가 자라난 집이 있던 안토니로 돌아갔다.
그 집 뒤뜰을 흐르던 비에 브르 강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강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버지가 강가 주변에 심었던 나무들만이
그 자리를 증언하듯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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