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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A Oct 07. 2021

꽁치는 뼈째 씹어야 제맛이다.

홈메이드 꽁치김밥





꽁치는 어릴 적 나의 소울 피시 (Soul Fish)였다. 꽁치 구이를 먹을 때면, 아빠는 항상 엄마와 나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 가시를 발라주셨고, 나는 날름날름 아기새처럼 잘도 받아먹었다. 어느덧 이제 아빠는 꽁치의 가늘고 많은 가시를 발라주시기엔 어딜 가나 어엿한 아버님으로 불리는 연세가 되셨고, 자연스레 생선 가시 바르기는 엄마의 몫(?)이 되었다. 나는 참말로 아직도 철딱서니가 없다. 이쯤 되면 생선가시 바르기는 내 몫이 되어야 하는데도, 부모님과 함께하는 식탁에선 아직도 엄마가 발라주는 생선을 야금야금 잘도 받아먹고 있다니 말이다.


꽁치가 내 입에만 맛있었던 게 아니었다. 꽁치는 뭐니 뭐니 해도 흰 살보다는 검은 살이 훨씬 고소한 매력이 있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이다). 어릴 적 꽁치 살을 발라내면 껍질과 함께 노릇하게 구워진 검은 살은 내 숟가락 위에 살포시 올려져 있었고, 난 좋다고 받아먹곤 했다. 은갈치를 구워 도톰한 알이 나왔을 때도, 조기를 구워 뽀얗고 큰 살점을 발라냈을 때도, 자반고등어의 고소한 뱃살을 집었을 때도 부모님은 어린 딸을 먼저 챙겨주셨다. 한참 뒤에야 알았다. 부모님도 좋아하신다는 것을. 내 입에만 맛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을. 철없는 딸내미는 한참이나 더 자라서야 아빠의 정성을,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렸다.


제주도 꽁치 김밥과의 아찔했던 첫 만남. 한 번은 제주도에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는 꽁치 한 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김밥을 맛본 적이 있다. 꽁치를 좋아하니 보자마자 도전 의지가 샘솟았다. 다만, 꽁치의 머리와 꼬리가 적나라하게 김밥 꽁다리에 꽂혀있어 2초 정도 멈칫하면서도 순간적으로, "아빠, 이 김밥 속 꽁치 가시는 어찌하면 좋을까요?"를 허공에 외쳤다. 다행히 몸통의 큰 가시는 제거된 듯했지만, 잔 가시들이 남아있어 씹는데 각별한 주의를 요했다. 한 가지 더 아쉬웠던 것은 어쩔 수 없는 꽁치의 비린 맛?이었다 (물론 이점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본래 생선은 갓 구웠을 땐 비린맛이 크게 느껴지지 않고 고소하고 기름진 맛이 더없이 좋지만, 한 김 식은 뒤엔 알게 모르게 비릿함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덤으로 느끼함도 추가). 때문인지 김밥 속에 꽁치를 담백하게 구워 넣은 것도 좋지만, 조금만 간을 더하고 매콤함도 추가해주었다면 식은 뒤 느낄 수 있을법한 비릿함과 약간의 느끼함도 잡아주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자리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꽁치에 달콤*짭조름*매콤한 간을 입혀 조려내 한층 맛을 더해보기로 한다. 덤으로 가시를 발라낼 수고가 필요 없는 뼈째 먹는 꽁치 김밥으로 만들어, 부모님 중 어느 한분도 가시 바를 새 없이 온전히 꽁치 맛에만 집중하실 수 있도록 해본다. "아빠, 기대하세요. 엄마, 이제 꽁치 가시 걱정은 붙들어 매셔요."





[김밥 4줄 기준]

* 주 재료: 꽁치 캔 2개 (400g x 2ea), 깻잎 20장, 김밥용 김 4장, 김밥용 밥 3인분.
* 밥 밑간: 통참깨 톡톡톡, 참기름 2T, 식초 1T.
* 꽁치 양념: 다진 청양고추 1개, 다진 마늘 1T, 고춧가루 1T, 맛술 0.5T, 국간장 4T, 굴소스 0.5T, 올리고당 2T, 설탕 1T, 후추 톡톡톡.


1. 꽁치 (캔 속 기름은 버리고)를 넓은 냄비 or 웍에 담고, 양념장을 넣어 중*약 불에서 40분 정도 충분히 조려준다 (조릴 때 꽁치가 자박해질 정도로 물을 넣고, 꽁치를 한 번씩 뒤집어주면 타지 않고 간이 골고루 배인다).

2. 밥에 참기름 2T, 식초 1T와 통깨를 듬뿍 넣고 잘 섞어준다 (밥이 뭉개지지 않도록 주걱을 세로로 세워 자르듯 섞어준다).

3. 김 위에 밥을 한주먹 덜어 넓게 펴고, 깻잎 (취향에 따라 다양한 쌈채소를 활용해도 좋다)을 5장 정도 넉넉하게 깔아준 다음 조린 꽁치를 나란히 나란히 올려준다 (꽁치에 간이 충분히 배어있기 때문에 쌈채소를 넉넉하게 넣어 밸런스를 맞춰주면 좋다).






꽁치조림 김밥과, 한입 꽁치 쌈까지 완성.


김밥을 싸고 남은 꽁치 꼬랑지 부분은 깻잎에 한입 꽁치 쌈으로 만들어 먹어 본다. 마늘에 쌈장을 발라 얹어 한쌈 쏙 입에 넣으면, 칼칼하면서도 고소한 쌈밥 느낌에 자꾸만 손이 간다.


마요네즈와 고추냉이를 2:1 비율로 섞어 김밥에 스윽 발라 먹어주면, GAME OVER.


매콤 달콤, 짭조름한 삼박자를 고루 갖춰 조려진 꽁치가 깻잎 이불을 덮고, 수줍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칼칼하면서도 단*짠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꽁치 김밥. 매콤하게 조려내서 그런지 비린맛 걱정이 무색하게 한 김 식어서도 먹기에 거침이 없다. 캔 꽁치의 가장 좋은 점은 역시 크고 작은 가시를 바를 필요 없이, 뼈째 그대로 가뿐히 씹어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뼈째 희생하는 꽁치 녀석의 지극한 효심을 부모님도 느끼셨는지, 꽁치의 맛에 폭 빠져 좋아라 해주신 김밥이다. 


꽁치 넌 앞으로도 나의 소울 피시로 손색이 없다고, 너에 대한 나의 애정을 이렇게 또 한 번 가슴에 새겨본다.






Bona가 준비한 오늘의 요리, Bon appétit [보나베띠]: 맛있게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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