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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Nov 03. 2024

버릴까, 먹을까


얼마 전 한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동료와 함께 지방에서 숙박을 했다. 1박을 한 다음 날 아침, 행사 주최 측이 아침 식사를 위해 예약해 둔 식당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다행히 메뉴엔 ‘돌솥비빔밥’이 있었다. 주문 시, 계란, 고기, 김치 등을 빼 달라고 요청했다.


잠시 후, 내 앞에 놓인 돌솥비빔밥 한쪽엔 다진 고기가 섞여 있었다. 조리 시 습관적으로 고기를 넣었다가, 우리의 요청이 뒤늦게 떠올라 덜어낸 것 같은 흔적이었다. 밥알과 채소 틈에 다진 고기의 흔적이 꽤 남아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기에, 숟가락으로 그 주변을 퍼서 한쪽 그릇에 덜어냈다. 그 모습을 본 동료가 내가 덜어낸 음식을 자신의 그릇으로 가져가 먹었다. 내가 쓰레기 취급하며 덜어낸 음식을 동료가 먹은 것이다. 미안했다.


비건인 동료는 직장 생활을 하며 고기를 먹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종종 먹는다고 했었다. 그것을 남기면 음식물 쓰레기가 될 것이고, 그건 죽은 동물을 정말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버리기에, 비건들 중에도 이러한 상황에서 그냥 먹는 이들도 있다. 나에게 고기는 이제 음식이기 이전에, 항생제와 고름이 섞인 고통의 집합체여서 그저 거부감이 들어 먹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지만, 이건 온전히 내 몸을 위한 행위인 것이지, 환경을 생각하면 먹는 것이 맞다.






비건이 된 후, 딜레마인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돌보는 동물이 ‘육식’ 동물이라 육식 음식을 구매해야 할 때다. 육식 음식을 살 때마다 느끼는 갈등을 무시해야 돌봄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비건’ 사료도 존재한다. 하지만, 엄연히 육식 동물에게 비건 음식을 먹이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을뿐더러, 무엇보다 비건 사료는 인간의 비건 음식만큼이나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이다. 큰맘 먹고 산 비건 간식은 개와 고양이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건강식을 주고 싶어 나와 동료가 바나나와 고구마, 오이 등을 시도한 적도 있지만, 보호자가 남긴 음식을 간식처럼 먹는 ‘마당개’에게는 너무 밋밋한 맛이라 거절당했다.


새벽과 잔디의 식단에도 사료가 일부 포함되는데, 성분은 비건이다. 만약, 새벽과 잔디가 육식 동물이었으면 어떻게 돌보았을까 종종 생각한다. 동물원의 사자에게 주는 것처럼 닭의 몸을 사서 넣어 줬을까? 새벽과 잔디가 채식을 해도 되는 종이라서, 나에게 그런 고민을 주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이 동물을 도축하고 나면 고기로 먹지 않는 부분들은 반 정도가 된다고 한다. 미국인의 기준인데, 한국인의 경우 서양에서 잘 먹지 않는 부위도 다양하게 요리하고 먹기 때문에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남은 부분,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동물의 사료나 간식이 된다. 과거 찾아갔던 한 닭 도축장에서는 아예 한쪽에 ‘렌더링’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인간이 먹기엔 질이 떨어지는, 수준 미달의 몸들은 렌더링이라는 과정을 통해 다른 상품으로 탄생한다. 그 대부분이 개, 고양이의 간식과 사료다. 실제로 개, 고양이 사료나 간식 패키지에는 특정 육류 업체의 로고가 떡하니 붙어 있다. 기업 입장에선 인간 음식과 동물 음식을 같이 팔아치우는 것이 이득이다.  


그러니까, 내가 돌봄을 위해 사는 사료는 인간에게 팔아치울 수 없는 몸으로 만든 것이다. 동물이 먹지 않으면, 그대로 쓰레기가 되는 것. 해외의 렌더링 대기업의 광고 문구를 보면,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하도 많아 렌더링이 그러한 쓰레기를 줄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으로 기여한다며 자신들을 옹호한다.






나는 사료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안다. 동물의 고통뿐만 아니라, 그 몸 안에 얼마나 나쁜 것들이 포함되었는지 안다. 인간은 절대 먹지 않을 쓰레기 같은 음식을 돌보는 동물에게 내미는 것은 언제나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내가 숟가락으로 덜어낸 다진 고기를 동료가 먹을 때 미안했던 것처럼.




역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개도, 고양이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사냥해서 먹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음식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다른 상위 포식자에게 음식이 되고. (인간도 누군가에게 피식자가 되어야 한다!)


개는 묶여 지내고, 세상은 전부 아스팔트 바닥이다. 동물들은 매일 도축되고, 그렇게 생산된 고기는 또 엄청나게 버려진다. 버려지는 부위를 주워 만든 제품도 또 버려진다. 이 세계 속에서 나는 또 버려질 육식 제품을 사며 괴로워한다. “버려진 것이다!”


윽. 사기 싫어. 꾸역꾸역, 고기를 삼키던 동료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누군가로 인해 억지로 먹게 되는 것, 선택지가 없어서 살 수밖에 없는 것. 억지로 먹고, 억지로 소비한다.


쓰레기를 소비하지 않게, 도축장과 렌더링 시설이 멈춰라. 동물들이 자유롭게 피식자와 포식자가 되어 살아갈 수 있게 해라. 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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