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은 겁쟁이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즐겨보는 철학 블로거가 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 시간이 날 때 자주 챙겨 보는 편이다.
모닥불님이 읽어보면 좋아할 것 같아요.
아는 분이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내 인생에 그의 글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한 번쯤 가볍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서 자신만의 논조를 깊게 풀어낸다. 그의 타고난 철학적 재능에 때론 시기심을 느꼈지만, 이내 얼마 가지 않아 재능은 타고나서만 되는 게 아니라 그에 준하는 노력 또한 뒷받침됐을 거라는 생각에 그 감정은 자연스럽게 소멸되었다. 그는 글에서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몇 번 언급했다. 하지만 내가 지켜봤을 때 자기 자신을 가장 잘 안다는 강점이 있다. 만약 그가 책을 출간한다면 고민 없이 바로 구입할 것이다.
몇 년 전에 그는 인생을 계란에 비유하는 글을 썼다. 우리의 일상은 주로 흰자로 구성되어 있다. 흰자는 한없이 권태롭지만 부담 없이 편안하다. 반면 노른자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느낀다. 브런치 작가라면 글이 될 것이고, 예술가라면 예술 작품이 될 것이다. 그것에 열중할 때는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흔히 우리는 강남과 같은 알짜배기 땅을 노른자 땅이라고 부른다. 누구나 강남에 살고 싶어 하듯 인생에서도 우리는 흰자보다 노른자가 많기를 원한다. 그러나 권태롭고 부담 없이 편안한 흰자와는 달리 노른자를 얻기 위해서는 고통이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살아 있다는 실감은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메슬로우(Abraham Maslow)의 욕구 단계 이론(needs hierarchy theory) 중 3단계 이상의 정신적 욕구(상위 욕구)에서만 느낄 수 있다.
메슬로우(Abraham Maslow)의 욕구 단계 이론(needs hierarchy theory)
1단계 - 생리적 욕구 : 음식, 의복, 주거 등 삶 그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욕구
2단계 - 안전 욕구 : 신체의 위험과 생리적 욕구의 박탈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욕구
3단계 - 소속 및 애정 욕구 :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4단계 - 존중 욕구 : 내적 외적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어떤 지위를 확보하기를 원하는 욕구
5단계 - 자기실현 욕구 : 자기발전을 위하여 잠재력을 극대화, 자기의 완성을 바라는 욕구
마음의 평정은 흰자에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흰자가 가득한 삶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굳이 현재 상황에서 변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하면서 살아간다. 소속될 필요도 없고, 사랑받지 않아도 되고, 어떤 지위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졸졸졸 흐르는 강물처럼 평온한 삶만을 선호한다.
둘 다 장단점이 있다. 노른자는 강렬하지만 위험하고 고통스럽다. 흰자는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권태롭다. 쇼펜하우어가 말했듯이 고통과 권태가 삶, 즉 노른자와 흰자를 구성한다.
필자는 자기실현의 욕구가 무척 강하다. 보통 이 경우는 하위 단계에 대한 욕구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 무척이나 피곤한 삶을 산다. 인생에 있어서도 노른자가 많아지기를 선호한다.
그래서 이전에 썼던 글의 제목에서도 보다시피 업무 시작 전 20~30분 정도 독서를 하고 있고 퇴근 후에도 곧장 집에 가지 않고 스타벅스에 가서 계획한 일들을 처리하는 편이다. (내가 봐도 참 피곤하게 산다)
브런치에 글을 쓰거나 바스락 모임에 참여하거나 강연을 할 때 살아 있음을 실감한다. 확실히 내 인생에서 노른자다. 음악이나 영화 감상과 같은 대중적인 취미는 좀 더 깊이 접근하지 않으면 모를까, 아직은 노른자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그 외의 삶은 흰자다. 일을 하더라도 그것 또한 흰자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실감보다 주기적으로 받는 돈에 있어서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라캉이 말하기를 욕망은 겁쟁이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했다. 일부러 흰자 가득한 삶을 택했더라도, 우리는 어느 순간 상위 욕구가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그때 당신은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 탄생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흰자와 노른자는 분리시킬 수 없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발현되는 순간 여전히 흰자 가득한 삶을 바란다면 그건 만족이 아니라 겁쟁이니까.
본문에서 언급한 철학 블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