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에 좋은 타이밍이라는 게 있을까?
팀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개인의 선택권이 많지 않은 회사라는 공간에서 그나마 내 의지를 오롯이 피력할 수 있는 한 마디였다. 얼마 있지 않아 회사에도 금세 소문이 퍼졌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조만간 그만둘 것이라고 예상했기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내 인생의 다음 노선을 궁금해했다. 그들은 좋지 않은 타이밍에 나가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3개월간의 인턴 기간을 거쳐 2015년 10월에 정직원이 됐고 2018년 4월이 되기 이틀 전 날 퇴사했다.
3년은 채우고 가지 그래.
대리는 달고 나가지.
그들의 말처럼 6개월만 더 다니면 내 경력은 3년이 된다. 그리고 내년 이맘때쯤 별 탈 없이 대리로 진급할 것이다. 2년 6개월이라는 다소 애매한 경력보다 3년이라는 깔끔한 경력이 낫다는 것은 충분히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대리로 진급하면 더더욱 낫다는 것도 말이다.
그런 생각을 안 한 것이 아니다. 생각은 이미 충분히 했다.
다음 노선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발적인 퇴사는 아니었다. 꽤 오랜 시간 고민했고 이 선택으로 인해 얻을 것과 잃을 것을 누구보다도 세밀하게 따졌다. 계산해보니 잃을 게 많았다. 그래서 고민하던 시간도 꽤 길어졌다. 그렇지만 얻은 결론은 고민을 많이 한다고 해서 잃을 것이 줄어들지도 얻을 것이 늘어나지도 않더라.
항상 아쉬움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아쉬움을 최소화하지 않고 싶었다. 아쉬워하는 그들의 말대로 했다면 경력 면에 있어서는 시장에서 지금보다 분명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안다. 일단 3년을 채우면 몇 개월 뒤에 대리가 코 앞이기에 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리를 달면 이제 이 업종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은 경력자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더 나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가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다.
당분간은 몸담았던 SW 개발 업종에서 일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학에서 관련 전공을 배웠고 그것을 활용하는 SW 엔지니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였다. 싫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엄청 좋고 그러진 않았다. 그저 나쁘지 않은 것 중에 하나였다.
나쁘지 않다는 것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어딘가에 있다. 나쁘다면 개선의 여지가 있고, 좋다면 발전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애매한 곳에는 그런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할 것 같았던 20대도 어느덧 끝자락에 위치해있다. 아쉬움의 함정에 빠지게 되면 계속 아쉬운 것에만 집착하게 된다. 그렇게 29년을 살아왔기에 이제는 그 집착을 조금씩 덜어보려고 한다.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같은 장소에서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돌아온 것 같아 좌절했어.
하지만 경험을 쌓았으니
실패를 했든 성공을 했든 같은 장소를 헤맨 건 아닐 거야.
- 영화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당분간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잘하는지 찾아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나만의 작은 숲을 찾는 시간이 될 듯싶다.
겨울을 나기 위해 쌓은 장작처럼 겨우내 퇴사에 대한 글감을 차곡차곡 쌓았다. 봄비가 봄을 재촉하고 새싹이 피기 시작한 지금부터 장작을 하나씩 꺼내 아직 가시지 않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불을 지펴보려고 한다. 스스로도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동시에 이름 모를 누군가 피워놓은 모닥불을 통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이들의 선택에 이 글이 따스한 도움이 되기를.
2015.07.01 - 2018.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