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아홉, 퇴사 후 돌아보는 회사 생활
직장을 그만두기 전에 몇몇 사람들에게 회사를 왜 다니는지 물었다. 그들은 어이없는 내 질문에 친절하게 각자 상황에 맞는 대답을 했지만, 결국 모든 대답은 돈에 관련이 있었다. 지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돈, 좀 더 커리어를 쌓아서 연봉을 많이 받기 위해, 집 대출금을 갚기 위해,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등등등.
그럼 나는 왜 그동안 회사를 다녔을까?
1. 월급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비와 내가 사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직장에서 하고 있는 일 외에 다른 일이 생계를 책임져줄 만큼 많이 벌어다주지 않는다. 설령 벌어준다고 하더라도 직장에서 받는 월급만큼 확실한 것이 없다.
2. 배우기 위해서
회사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배울 게 있는 건 아니었지만 확실히 1명 이상은 있었다. 사람에 따라서 업무에서 배울게 참 많은 사람도 있었고, 업무 외에서 배울 게 많은 사람도 있었다. 물론 배운다는 게 꼭 좋은 쪽으로만 뜻하지 않는다.
기분 나쁘게 말하는 사람,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 커피만 축내는 사람, 본인이 한 일에 과대 포장한 사람들에게도 배울게 많다. 저렇게 행동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반면교사 삼는 계기가 된다.
3. 동료들이 좋다.
첫 직장이라서 그랬는지 몰라도 동료들이 좋았다. 처음 입사할 때도 잘 몰랐던 부분 하나하나 친절히 알려주었고, 퇴사할 때도 누구보다 응원해주고 격려해줬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회사 동료들이 좋았다.
4. 배운 게 이거고 그냥 다니다 보니
대학교 때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는 그에 맞는 SW 개발 쪽에서 일을 했다. 내가 하고 싶어서 대학에 지원하고 졸업 후에 SW 개발을 간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정보통신공학을 갔고 SW 개발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말 그대로 배운 게 이거고 그냥 다니다 보니 어쩌다 이쪽으로 흘러왔다.
5. 기타
직장인일 때는 그렇게 고민하지 않았던 문제였는데 퇴사를 앞두고, 이미 퇴사 후의 삶을 살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책이나 브런치를 통해 살펴보니 누군가 지금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는 게 그렇게 무섭단다. 회사 다닐 때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그 말을 들으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난감하다고 한다. 이럴 때 직장인이었다면 그냥 회사 다녀요.라는 한 마디면 대답이 끝나는데 말이다.
1. 두려움을 겪어보기 위해서
취업 준비생일 때 처음으로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는다는 공허함이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일까, 어딘가에 얼른 소속되기 위해 직무만 정했을 뿐, 직장의 기준은 그렇게 높이 설정하지 않았다. 시기의 차이는 있어도 취업을 못한다는 걱정은 없었다. 당장 취업을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영영 못할까 봐 두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퇴사를 생각하고 나서부터는 두려움이 나를 지배했다. 나가서 뭐하려고? 돈은 어떻게 벌려고? 지금 일이 하기 싫은 건 알겠는데, 좋아하는 일이 밥 먹여주지는 않아. 두려움의 감정은 내게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퇴사에 대한 생각이 간절할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가서 오히려 그냥 계속 회사를 다닐까도 생각해봤다. 그럴수록 통장 잔고는 늘어나겠지만 표정이 좋지 않아 우울한 내 미래가 그려졌다.
그 어떤 선택을 하든 항상 신중하게 고르는 편이다. 그러나 그 신중함이 퇴사에 있어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신중하다는 것은 리스크를 어떻게든 줄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데 지금의 선택에서는 신중하다고 해서 리스크를 줄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두려움을 그냥 한 번 겪어보자는 차원에서 회사를 나섰다.
2. 맞지 않는 SW 직무
SW개발을 업으로 삼고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개발 자체를 무척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렇지 않은 친구들은 1년도 못 버티고 다른 직무로 이미 떠났다.) 그들의 표정을 보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이런 표정이 나오기도 하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처럼 좋아할까?라는 질문에 대답은 NO였다. 그럼 싫어할까?라는 질문에도 대답은 NO였다.
SW개발은 내가 가장 잘하는 직무인 동시에 흥미를 느끼는 분야다. 그러나 적어도 퇴사하기 전 다녔던 회사의 방산SW 개발업은 자율성과 유능감을 중시하는 내 성격과 전혀 맞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SW 개발을 한다면 방산쪽이 아닌 다른 분야로 갈 확률이 높을 것 같다.
01. 평일에 조조 영화 관람
회사를 다닐 때도 주말에 조조 영화를 자주 관람했다. 그러나 보통 다음 일정이 있을 때 시간을 내서 관람했기 때문에 조조 영화를 본 날은 굉장히 피곤했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그냥 집에서 푹 쉬었다.) 평일에 조조 영화를 본다는 게 참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직장을 다닐 때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들을 굉장히 부러웠다. 그리고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 예매를 하는데 주말과 달리 평일의 영화 가격이 이렇게 저렴한지 몰랐다.
02. 스타벅스로 출근하기
올해 초에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하다라는 글을 썼다. 이제 '퇴근 후'는 삭제하고 그냥 스타벅스로 출근하고 싶다. 다행히 직장을 다닐 때 스타벅스 카드를 두둑이 충전해놓아서 당분간은 걱정 없겠다.
남들 회사로 출근할 때 스타벅스로 출근하기!
03. 비수기에 여행 가기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 1년에 1~2번 해외 여행을 다니곤하는데 연말, 황금 연휴, 여름휴가와 같은 성수기가 아니면 갈 수가 없었다. 퇴사 후에 가장 먼저 한 건 항공권 예매였다. 4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와 치앙마이를 간다. 블라디보스토크는 20만원 초반, 치앙마이는 30만원 초반대로 예매를 완료했다. 비수기라서 가능한 금액이다. 그렇지 않으면 블라디보스톡은 30만원이 훌쩍 넘고, 치앙마이는 50이 훌쩍 넘는다.
3박 4일의 블라디보스토크와 19박 20일의 치앙마이 여행이 벌써 기대된다.
04. 아트하우스 영화 연속으로 관람하기
영화 중에 유독 아트하우스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상영하는 관이 많이 없어서 회사를 다닐 때 주말에 시간을 내도 보기가 어려웠다. 이번에 아트하우스 극장인 CGV압구정에서 연달아 아트하우스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예매를 했다.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플로리다 프로젝트>
05. 카페에서 하루종일 책 읽기
요즘 책 읽는 게 지지부진하다. 카페에서 아무런 근심없이 하루종일 책 읽기. 4월 내에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