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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pr 18. 2018

나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이다.

스물아홉, 퇴사 후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퇴근길에 조금씩 챙기던 짐들이 어느새 눈에 띄게 줄었다. 항상 신기한 물건으로 가득했던 내 자리가 비어 있는 모습을 보니 이제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야금야금 짐을 챙기니 어느새 마지막 근무일이 되었다. 마저 남은 짐을 가방에 넣고 동고동락했던 회사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사무실을 돌았다. 내겐 특별한 날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었다, 비어있는 자리가 많다. 평소였다면 보이지 않았던 흔적들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마지막 가는 날까지 참 바쁘구나.


되돌아보면 바쁘지 않은 날이 드물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너무 싫어서 떠났고, 혹자는 바빠야 일할 맛이 난다고 했다. 나는 어디에 속했을까? 바빠야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항상 고객사의 일정에 쫓기던 지난날들이 너무 싫었다.  


친분이 없던 사람들은 형식적인 대화를 주고받다 인사가 금방 끝났지만 대부분은 다음 목적지를 궁금해했다. 딱히 어떤 기준을 세우지 않았는데 누군가에게는 있는 그대로 얘기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얘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기준을 세우지 않았지만 2년 6개월 동안 회사 생활 동안 그 사람에게 열린 마음에 따라 자연스레 그러지 않았을까.

 

#1.

퇴사하기 몇 주 전에 평소에 친분이 없던 타 부서 팀장님이 내 퇴사 소식을 들었는지 잠깐 이야기를 하자고 하신다. 마치 면접을 보는 것처럼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전혀 접점이 없는 부서다 보니 그렇게 꽁꽁 숨길 필요는 없었다.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듣는 내내 참 신기해하신다. 그럴만하다. 나 같은 사람이 사내에 있었다면 나도 신기했을 것 같다. 어찌 됐든 왜 회사 다니면서 할 수는 없었는지, 지원 부서로 옮겨서 해보는 건 어떻냐는 농담 같은 제안에 씩 웃었다. 애초에 가능한 환경이 아니었다.


#2.

너는 영업이나 경영 파트 쪽으로 가면 진짜 잘할 것 같아.

업무는 모르겠지만 업무 외 분야에 있어서는 항상 신기한 사람으로 통했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독특한(?) 모임을 2년 넘게 운영하고 있고, 남들이 귀찮아하는 기록을 아날로그 도구인 바인더뿐만 아니라 디지털 도구인 원노트나 워크플로위를 통해서 쓰기도 하고 가계부, 카드, 저축과 같은 재정 관련 분야를 포함해 잡학다식으로 아는 게 많아서 더 그랬다. 그냥 혼자 아는 선에서 그쳤다면 덕후 기질만 물씬 풍겼겠지만 타인에게도 십분 발휘했다. 내가 관심 가지는 것들이 어느새 회사 곳곳에 퍼졌다.


저는 국민카드 직원이 아닙니다..

히 신용카드 쪽에서 국민카드 설계사 아니냐며 유독 두각을 나타냈는데 카드 신청할 때 추천인에 너 이름 적으면 되냐는 소리를 엄청 많이 들었다. (국민카드 직원이 아닙니다..)





여전히 두려운 당신에게


어떤 선택을 할 때 좋고 싫음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선택한 건 좋고, 선택하지 않은 건 싫으니까) 후회를 덜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좋은 것과 덜 좋아하는 것, 싫은 것과 덜 싫어하는 것들이 섞여 있다. 동화처럼 선과 악,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규정하기 애매한 위치에 존재한다.


51%의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하든, 49%의 가능성이 있는 선택을 하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49%(또는 51%)의 리스크도 함께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두려운 나머지 리스크를 회피한다.


우리는 프리랜서와 같은 자유인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의 곤고함은 애써 보지 않으려 한다.


누구나 그랬듯이 필자도 취업 준비생일 때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꼈다. 그 불안감은 되돌아보면 처음 겪어보는 소속감의 부재에서 비롯됐다. SW 개발 직무만 할 수 있다면 회사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때는 불안감만 있었지 영원히 취업을 못한다는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불안감보다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다른 기로에 서있다.     


내가 지금 두렵구나


두려움을 느꼈을 때 처음 취한 행동은 회피였다. 당장은 편하지만 엊그제 만난 택배 기사님이 또 다른 물건을 들고 나를 다시 찾는 것처럼 빠른 시일 내에 나를 찾아왔다. 마주하지 않은 일상에 대한 소소한 불만이 점차 쌓여갔다. 처음에는 소소하지만 어느 순간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된다. 그런 시간이 켜켜이 쌓일수록 회사에 대한 불만은 많아지고, 언젠가 나갈 것이라 떠들지만 열심히 일하던 옆 동료가 먼저 떠났다.


당장 편하자고 어느 순간부터 양치기 소년이 되었다.

  


나도 똑같은 사람이다.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아사히 신문에서 제 발로 나온 이나가키 에미코 씨가 쓴 책 <퇴사하겠습니다>, 삼성전자를 다니다 퇴사 학교 교장이 된 장수한 씨가 쓴 책 <퇴사학교>까지 퇴사와 관련된 책을 참 많이 읽었다. 그들의 퇴사 성공 스토리를 읽으면서 대기업이니까, 충분히 돈을 모았으니까. 도전할만한 멘탈이 되니까. 라며 그들의 용감한 선택을 재능이라고 합리화했다.


천재를 마법적인 존재로 생각하면, 우리 자신과 비교하면서 우리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를 신적인 존재로 부르면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진다.


책 <그릿>을 읽으면서 뜨끔했다. 회피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부끄러웠다.


내가 두렵다고 두려움을 뚫고 나온 사람들의 용기를
그저 재능으로 둔갑해버렸구나.


그들을 통해 보고 싶은 것만 본 건지 모르겠다. 대기업이더라도, 충분한 돈이 있더라도, 도전할만한 멘탈이 되더라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고 그 조건을 가지고도 여전히 참으면서 회사를 다니는 분들은 많다. 생각해보면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은 사람이었다.




스물아홉, 잠시 쉬어가면서 오랫동안 회피했던 두려움에 직면해보려고 한다. 여전히 두렵지만 나에게는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다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쉬어가는 동안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바스락 모임에서 최근 이직을 한 분이 계신다. 퇴사하고 일주일 가량 시간이 생겨서 여행을 떠날까도 생각해봤는데 평소에 처리하지 못한 은행 업무를 보고,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니 금방 일주일이 지났다고 했다. 여행처럼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별 것 아닌 것들이 결국 우리 삶에 있어서는 별 것인 경우가 많다. 일단은 그런 것들부터 하나둘 해보고 싶다.


밤은 짧아, 걸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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