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관두기 전에 나름 스스로 규칙을 세워 '퇴사하기 전 점검해야 할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과연 잘 지켜졌을까?
1. 가장 바쁠 때 그리고 감정적으로 퇴사하지 말 것.
2. 불만을 제기하지 말고 나갈 것.
3. 무슨 일을 할 것인가는 이야기하되, 어떤 것들을 할지는 금물.
4.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고 인수인계서 꼼꼼히 작성할 것.
5. 퇴사하기 전의 불안, 걱정, 두려움 등 느끼는 감정 세세히 기록할 것.
6. 퇴사 후 곧바로 여행 다녀올 것
가장 바쁠 때 그리고 감정적으로 퇴사하지 말 것.
가장 바쁠 때는 아니지만 덜 바쁠 때 회사를 나왔다. 원래 맡았던 프로젝트까지 마무리하고 나가려고 했으나 프로젝트 일정이 지연되어 같이 하던 사람이 맡아서 하기로 했다. 처음 입사할 때부터 진행한 프로젝트라 형상관리 서버(SVN)에 코드부터 문서까지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작년 가을쯤 감정적으로 퇴사할 뻔한 적이 있었다. (물론 퇴사는 매일 생각하고 있지만)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때 이대로 나가면 100% 후회할 거 같아서 참은 적이 있다. 되돌아보면 그때 나가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만약 그때 나갔더라면 겨우내 집 계약부터 돈 문제 등 여러 방면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때 처음 느꼈다. 퇴사는 감정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이성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욱할 때 절대 그만두면 안 되고, 아무 일 없이 평탄하고 차분하게 흘러갈 때 그만둬야 한다.
불만을 제기하지 말고 나갈 것.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 불만은 모두 얘기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큰일 날 소리였다. 팀장님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고 나서 내가 서 있는 자리와 회사 동료들이 서 있는 자리는 달랐다. 나는 곧 떠날 사람이었고 그들은 여전히 남을 사람들이다. 만약 불만이 있다면 그들과 같은 위치에 서 있을 때 얘기했어야 한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는 이야기하되, 어떤 것들을 할지는 금물.
가장 잘 안 됐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슨 일을 할 것인지만 이야기했고, 또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것을 할지 이야기했고 그 둘을 합쳐서 얘기한 경우도 있었다. 왜 사람마다 기준을 달리해서 말한 건지 여전히 모르겠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렇게 스스로 체득된 건 아닐까.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고 인수인계서 꼼꼼히 작성할 것.
작성할 시간이 없었다. 막바지에 일이 몰려서 쳐내느라 바빴다. 나보다 2주 먼저 나간 회사 동료도 전 날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나갔다.
퇴사하기 전의 불안, 걱정, 두려움 등 느끼는 감정 세세히 기록할 것.
가장 잘한 것 중 하나. 그래서 지금 이렇게 퇴사와 관련된 글을 계속 쓸 수 있다.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분량이 나오겠지만, 디테일은 생각보다 기록에 있다. 특히 감정은 휘발성이 강해 느낄 때 바로 적어야 나중에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퇴사하기 전에는 참 불안했고, 걱정도 많고, 두려웠는데 막상 나와보니 별 거 아니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었는지.
퇴사 후 곧바로 여행 다녀올 것
일주일 뒤 3박 4일 일정으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고, 보름 뒤에 태국 치앙마이로 긴 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치앙마이 님만해민에 위치한 마야 백화점 BLACK CANYON COFFEE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퇴사 직후는 가장 시간이 많고, 가장 생각이 많을 시기다. 홀로 여행을 떠나 맛있는 것도 먹고 생각을 정리해보자.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