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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y 08. 2018

내가 퇴사하기로 결심한 6가지 이유

1. 자율성의 부재

고객사는 생각이 그냥 떠오르면 내뱉듯이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했다. 하루 전 날 급하다는 이유로 출장이 생기고, 정말 심할 때는 퇴근 후 집에서 쉬다가 출장지로 불려 가는 동료도 있었다. 공동의 목표, 이익 창출이 주된 목적인 회사가 반대에 위치한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하고 회사 차원에서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피해받는 당사자를 위해 최소한 챙겨주는 제스처라도 취해야 한다.


자율성
자신의 목표를 스스로 결정하고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성향을 의미합니다. 서용마님의 자율성은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행동하는 데 있어서 주위 사람들 의견보다는 자신의 판단에 따르며, 독립적이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 여기는 성향이 매우 강합니다.


갑자기 발생하는 출장, 퇴근 후의 연락,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카톡 등 비합리적인 방식의 업무 스타일은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 거절을 못하진 않아 거부 의사를 밝힐 때도 있었지만 매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직장인이 야근하는 이유는 두 가지가 있다. 당연히 첫 번째는 일이 많아서다. 정규 업무 시간에 끝내지 못했거나 일정상 급한 이유로 퇴근을 밤늦게까지 미룬다. 두 번째는 눈치가 보여서다. 할 건 없는데 상사가 퇴근을 하지 않았다. 일찍 가고 싶은데 어제도 일찍 퇴근했다. 내일 일찍 가기 위해서 오늘을 희생한다.

  

작년에 그릿 검사를 했을 때 자율성은 거의 만점에 가까웠다.

바스락 모임에서 그릿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 검사를 받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자율성 항목에 대한 세부 설명을 천천히 읽었다.


아, 내가 그래서 이럴 때 짜증 났던 거구나.


문장을 소화하고 나니 짜증 났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듯 생각난다. 설명되지 않았던 순간이 이렇게 몇 줄 안 되는 문장으로 단박에 설명되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때부터 자율성은 어딜 가든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근태는 어디 갔어요?

탄력 출퇴근을 실시하지 않는 대부분의 회사의 정규 출근 시간은 9시. 우리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을 넘어서 오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다. 회사는 근태가 고과에 반영된다고 강조하면서 그 이상은 뭐라 하지 않았다. (사실 고과에 반영되는 것도 미미한 듯하다.) 오히려 일찍 오는 사람들이 이상할 정도로 지각이 많았다.


지각이 많은 이유는 있었다. 야근을 넘어 새벽까지 근무하거나 철야 근무를 하는 사람이 잦았다. 갑자기 일이 생기면 밤새 디버깅해야 하는 건 개발자의 숙명이다. 차라리 밤늦게까지 근무하는 사람들을 배려해서 출근 시간을 조금 늦추면 어땠을까. 새벽 3~4시까지 근무하더라도 다음 날 9시까지 와야 한다. 이 사이클을 몇 번 돌고 나면 밤에 일하고, 아침에는 설렁설렁 일할 수밖에 없다. 오전 내내 커피만 마시다가 정신이 드는 오후부터 본격적으로 일하는 문화는 내가 다닌 회사만의 문제는 아닌 듯싶다.     


3. 조직에 대한 불만 팽배

프로젝트가 까다로워 다른 동종업체들은 모두 거절하고 있는데 극도의 저자세로 프로젝트를 받아온다. 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직원들은 죽어난다. 그리고 한 번 시작한 프로젝트는 업계 특성상 평생 A/S를 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고객사 담당자도 퇴사하고, 우리 쪽 담당자도 퇴사해서 덩그러니 남아있는 경우가 많아 두 담당자 모두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뭐 별 수 있나. 처음부터 둘 다 삽을 푸는 수밖에.


히스토리 없는 프로젝트는 모든 과정이 고난의 연속이었다.


경영진은 직원들의 의견을 듣는 척하면서도 결론적으로 듣지 않는다. 연말이 되면 혁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면서 막상 입맛에 맞지 않는 것들은 듣지 않는다. 팀장님과 고과 면담을 할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 고객보다 직원을 먼저 챙기는 게 혁신 아닐까요?


팀장님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팀원들의 의견을 경청해주는 팀장님이었지만 아쉽게도 경청만 하셨다. 회사가 바뀌는 것보다 내가 먼저 바뀌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4. 이 분야에 최고가 될 수 없다는 느낌

1년, 2년 업무 경력이 쌓여가면서도 발전하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매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노하우도 쌓이고 자료화도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늘 주먹구구식으로 일처리 하는 느낌만 들었다. 조직이 개편되고 나서 바뀐 팀장과의 면담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용마씨, 정리 잘하는 걸 업무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안 그래도 정리 습관이 업무에는 생각처럼 적용되지 못해 아쉬워했던 시기였다. 영국의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 교수는 지식의 차원을 암묵지와 형식지로 나누었다. 학습과 체험을 통하여 개인에게 습득되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상태의 지식암묵지라 부르고, 암묵지가 문서나 매뉴얼처럼 외부로 표출되어서 여러 사람이 공유할 수 있는 지식형식지라고 부른다.


소위 회사에서 인정받는 일 잘하는 대부분의 상사는 '암묵지'를 선호했다. 그 지식 자체가 본인의 몸값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조직 차원에서는 개인의 머리 속에만 머물고 있는 암묵지를 형식지로 만들고 싶어한다. 암묵지를 형식지로만 만들어도 대부분의 비효율적인 업무 프로세스가 상당히 개선된다.


그런데, 그 누가 본인의 무기인 지식을 형식지로 만들겠는가. 형식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업무를 진행하면서 틈틈이 히스토리를 작성하도록 하는 강제성도 있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관리자가 체크해야 한다. 개발만 해도 진이 빠지는 개발자에게 형식지 만드는 작업은 고된 일이 하나 더 생기는 법이다. 그만큼 회사 차원에서 만들어가는 분위기와 적절한 보상을 지급해야 어렵게 얻어낼 수 있는 결과물이다.


SW 개발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진 강점이 업무에 고스란히 녹아드는 것도 아니었다. 좋아하는 분야의 지식을 형식지로 만드는 건 고통스러워도 잘 참는 반면 몸담고 있는 SW 업종에서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분야에서 최고는 될 수 없겠구나..

 


5. 일에 대해 수동적인 나의 자세

개장에 갇힌 개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여봐야 철창이 본인의 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저 앞발에 얼굴을 기대 낮잠을 청하거나 두 눈을 뜬 채 멍하니 쉬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먹을게 오면 후다닥 먹고 다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간다. 그들에게는 자율성이란 없다.


어느 순간부터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전적으로 회사 잘못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나태해지고 반발심만 강해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부장님과 외근을 가서 식사를 하다가 일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근했을 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부장님은 디버깅을 하다가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이후에 문득 그때 대화가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었다. 호기심이 없는 개발자는 희미해지는 촛불과도 같다. 처음에는 분명 호기심이 가득했는데 어느 순간 지쳐있는 나를 발견했다.

  

6.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의 확대.

평일(5일)은 회사를 위해 투자할 수 있되, 주말(2일)은 뺏기지 말자는 생각에 회사를 다니면서 7:3 법칙을 세웠다. 일주일 중 평일은 약 71.4%를 차지하고, 주말은 약 28.6%를 차지하니 대략 7:3 정도 됐다.


회사를 다니면서 어느 순간부터 반복되는 야근에 익숙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야근도 모자라 주말 출근까지 이어졌다. 바스락 모임에서는 매주 수요일에 카페 주간 인증 게시판에 본인의 주간 스케줄을 인증해야 한다. 밤새 디버깅하는데도 주간 인증만은 어떻게 하려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잠깐 와서 일정을 정리하고 인증하고 있었다.


분홍색이 업무를 뜻한다.

2016년 11월 마지막 주에는 가장 빠를 때가 12시 30분, 늦을 땐 2시 넘어서 퇴근했다. 그런데 이때 지금 봐도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게 수요일에 있는 주간 인증을 어떻게든 하려고 했고, 토요일 모임에는 웬만하면 참여하려고 같이 일하는 상사가 주말에도 나와야 할 것 같다는 말에 모임이 있는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토요일에는 바스락 모임뿐만 아니라 온라인 프로젝트로 진행하고 있던 디지털 정리력 과제 공지를 올리고 예정되어 있었던 오프라인 코칭까지 실시했었다. 좋아하는 일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한 주 일정이었다. 7:3 법칙은 평일, 주말뿐만 아니라 밥벌이를 해주는 일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취미 생활에도 적용됐다. SW 개발이 7이라면 취미 생활의 일종인 모임은 3에 속했다. 업무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3의 비율을 줄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자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퇴사할 거라며 농담처럼 회사 동료에게 말할 때와 달리 결심하는 순간 리스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힘들 때 버틸 수 있을까?

지금 받는 돈만큼 벌 수 있을까?

소비를 줄일 수 있을까?

 

그래서 조금만 더 생각해보자고 퇴사 시기를 미뤘다. 생각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리스크가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눈 감고 떠났다.


어느덧 퇴사를 하고 한 달이 지났다. 앞으로 뭐할 거냐는 주변의 물음에 행복한 현재를 이야기한다. 막상 회사를 떠나기 전 생각한 리스크는 그때 들었던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미리 경계하거나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보다는, 한 번 가볍게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또 가볍게 자기한테 더 좋은 방식을 찾아가는 게 어떨까 싶어요.
책 <일상기술연구소> 中



어렸을 적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진 적이 있다. 무릎이 까진 고통보다 주변의 이목이 집중돼있는 가운데 넘어졌다는 사실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괜찮다는 엄마의 말에 그제야 고통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땐 오히려 참을만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상처에서 오는 고통보다 항상 넘어지면 어떡하지? 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굳이 많은 것들을 미리 경계하거나 생각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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