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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y 30. 2018

퇴사하니 게을러졌다


퇴사하니 시간이 남아돈다. 부쩍 많아진 시간만큼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활동 반경이 줄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독서를 하고, 퇴근 후 카페로 출근해 글을 쓰고, 모임 준비를 하고, 주말에 예정된 코칭 준비까지 했다. 심지어 틈틈이 회사 동료나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술자리도 가졌다. (지금은 믿기지 않는데 주 2~3회 헬스장까지 다녔다)


나, 직장 다닐 때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직장을 다닐 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고 싶은 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야근을 하는 와중에도 바스락 모임 카페에서 주간 인증을 했고, 틈틈이 발표 자료도 업데이트했다. 좋아했던 일이었던 덕분일까? 욕심이 많았던 직장인의 '나'는 종종 힘들었지만 모든 것이 무너질 만큼 지친 적은 없었다. 덕분에 스스로를 믿게 되는 힘도 생겼다. 그 힘 덕분에 퇴사 후에도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를 나왔다. 그로부터 2달이 지났다.

  

회사에 빼앗긴 시간을 돌려받았다. 스스로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장 먼저 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 티켓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놀랐고, 시기 상관없이 어딜가나 한국 사람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며 다시 한번 놀랬다. 여행지에서는 '여행'이라는 핑계로 모든 것이 용서가 됐다. 하루 종일 쉬어도 끝이 정해져 있는 이벤트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심지어 스스로도) 뭐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상은 달랐다.


자투리 시간을 모아 하던 일이 이제 중심이 되었다. 그만 두기 전에는 그 일들을 앞으로는 집중해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고 기대감이 컸다.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회사에 다닐 때 처리한 업무들보다 적은 시간이 걸렸다. 업무량은 둘째치고 회사를 다닐 때는 업무를 하다가도 상사가 시키고, 업체에서 전화가 오는 등 시도때도 없이 나를 방해했다. 쉬운 일도 정신없이 처리하니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가끔 동료가 차라도 한 잔 마시자고 하면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일의 우선순위와 기한을 직접 판단해서 처리하다 보니 불필요한 시간이 많이 줄었다. 연락은 대부분 전화가 아닌 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서 온다. 그러니 일이 끝나고 확인하면 된다. 방해 요소가 줄어드니 몰입이 늘었다. 그 결과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 당황스러웠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빨리 끝나니 뭘 해야 할지 몰랐다.


매일 아침 일찍 카페로 출근해서 부지런히 살자고 다짐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직장에서는 어떻게든 자투리 시간을 만들어 책을 읽었는데, 지금은 책 읽을 시간이 많으니 오히려 손에 안 잡히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오전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는 날이 줄고,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도 사라졌다.


퇴사하니 게을러졌구나

 

어떻게 만든 습관인데 ㅠ


 심지어 회사 다닐 때 '잠'으로 낭비되는 주말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일단 나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조조영화 보던 습관마저, 언제든 볼 수 있는데 주말 아침에 왜 굳이?라는 생각으로 인해 거품처럼 사라졌다.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던 좋은 습관을 사라지고 힘들게 제거했던 빈둥대는 나쁜 습관들이 자리 잡았다.


'퇴사하고 게을러졌구나'를 인정하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 그전까지는 2년 6개월 동안 열심히 일했는데 좀 놀면 어때! 하루 종일 노는 것도 아니잖아!라는 생각에 게을러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래도 언제나 답을 찾을 것이다.


문제를 인정하면 일은 생각보다 쉽게 풀린다. 발생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게을러졌다는 것을 인정하니 지금처럼 자율성에 맡기지 말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퇴근 후 스타벅스로 출근했던 이유도 집에 가면 절대 안할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방학 계획표처럼 나만의 루틴 만들기


1. 기상, 취침 시간을 정한다.

2. 운동으로 매주 2~3회 등산을 한다. (날짜를 고정할지, 컨디션에 맡길지 실험해보기)

3.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마다 Workflowy에 그 왜 지키지 않았는지 이유를 적는다.


강제성 + 선언 효과 이용하기


1. 장착하고자 하는 습관(등산, 기상 시간 등)을 주간 키워드로 정한다. (글쓰기, 독서는 금지)

2. 퇴사 후 게을러졌다고 인정한다. (스스로 인정했으니 다른 사람에게도 그 사실을 인정하기)

3. 사람들과 같이함으로써 강제성을 부여한다. (바스락 모임, 온라인 프로젝트)


장기적인 목표 수립


1. 오늘 할 일이 끝나면 오늘 뭐 먹지? 뭐 하지? 생각하지 말고 장기적인 목표(책 쓰기, 코칭 커리큘럼 등)에 관한 일을 시작한다.

2. 당장 성과가 보이는 일보다 (성과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쓸모없는 일 늘린다. 과거에도 쓸모없는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강력한 습관이 된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스스로 왜 이 (쓸모없는)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들지 않을 것이다.





언제 취업될지 막막했던 취업 준비생일 때는 게을러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자기관리를 못하고 나태해졌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면 자존감이 정말 바닥까지 떨어질 것 같아서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그런 사실들을 쉽게 인정한다. 인정하지 않으면 더 어렵고 더 힘든 길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게을러졌다는 사실을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 만약 걱정했다면 이렇게 글도 못 썼을 테니까. 오히려 이런 기회로 직장 다닐 때 정말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금보다 활동 반경이 더 넓었을 텐데, 그 모든 걸 했던 그 시절이 있었던 덕분인지 그때의 기록을 되돌아보면서 자극을 받고 있다. 불안하고 두려워서 퇴사를 못했는데,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쓸데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다. 조금은 느릴지라도 차근차근 해결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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