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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ug 19. 2018

서른의 관계

각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를 축소한다. 

 2014년은 참 힘든 한 해였다. 당장 취업이 되지 않아 불안했고, 그 과정을 겪으면서 어떤 선택이 옳고 그른 것인지, 또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 선택의 기로마다 지금의 선택이 최고인지, 최악인지 구별 조차 하지 못했다. 그 모습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블로그에서 2014년을 되돌아보면서 총평한 글.


  어떤 친구들은 금세 취업하고, 아직 남은 친구들은 나와 같은 고민을 이어갔다. 취업한 친구들은 거하게 쏘는 자리를 만들어 친구들을 모으곤 했는데, 나를 포함한 몇몇 친구들은 축하를 건네면서도 표정이 그렇게 밝지 못했다. 축하하는 동시에 부럽기도 하고 질투의 감정이 한 데 섞여 쏟아지니 혼란스러웠다. 취업에 성공한 친구들이 점점 많아지자 대화의 중심도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때부터 몇몇 친구들은 더 이상 모임에 나오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달라졌다. 대학교 때 다 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놀았던 것처럼 관계에 변함이 없길 바랬지만 모든 친구가 취업한 이후에도 예전의 관계는 온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맺어진 관계에서 졸업 후에는 '취업', '미취업'에 따라 나눠지고, 그 이후에는 각자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방식으로 관계의 규모를 축소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에는 항상 다음을 기약한다. 그러나 이제 넉살이 좋은 친구가 종종 자리를 만들어도 서로가 다음을 굳이 기약하지 않게되었다.


 스물 초반의 술자리는 많은 사람들과 시끌벅적하게 음주를 즐겼지만, 서른이 가까워지는 지금의 술자리는 편한 사람들과 조용히 즐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더라도 굳이 마음에 맞는 사람들로 거리를 좁힌다.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평소보다 절제한다.


 불편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불편한 질문들이 오간다. 취미라도 있으면 그것에 대해 깊게 이야기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취미가 없다.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지 않으면서 독서가 취미라 하고, 누구나 다 보는 영화를 보면서 영화 관람이 취미라 한다.


  처음 보는 관계에서는 이름이 뭔지,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어디 사는지, 직업이 뭔지, 퇴근 후에 주로 뭐하는지, 주말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와 같은 뻔하고 불편한 질문들을 던진다. 익숙한 관계에서는 회사, 상사, 우리나라, 주변 사람들(+ 남자들은 여자 이야기, 여자들은 남자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결론은 험담이거나 불만이다. 좀 더 직설적이면 연봉까지 물어본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참 재미없다.


 할 말이 없어서 어색한 관계에서 그 분위기를 깨고자 던진 말들은 대부분 뻔하디 뻔한 호구 조사다. 상대에게 물어봤으면 나도 답해야 한다. 의미 없이 던진 질문을 다시 받으며 스스로 당황하기도 한다. 그런 자리가 끝나고 며칠 후면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다만 그때 느낀 감정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누구와 싸우고 나서 며칠 뒤 화가 가라앉았음에도 그 사람이 미운 것은 당시에 화냈던 감정이 다시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으면 다음 자리가 꺼려진다.


 열심히 내 얘기를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과 카톡을 하거나 다른 을 하고 있는 친구가 던지는 '아, 진짜?'와 같은 가짜 리액션이 기분이 나쁘더라도 뭐라 할 수 없는 것도 그 친구가 열심히 얘기할 때 나도 그렇기 때문이다.


내년이면 서른이다.

서른의 관계는 이렇게 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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