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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May 29. 2019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실래요?


님. 님. 님. 스티커 하나만 붙여주세요!


 자선단체 조끼를 입은 어린 여학생이 검지 손가락 끝에 스티커 하나를 붙이고 다가온다. 어째 날이 갈수록 친절해지는 느낌이다. 강남역 지하상가를 걷고 있으면 꼭 그들과 만난다. 스티커만 붙이는 일이라면 친절하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그들의 부름에 기꺼이 응하겠지만 그게 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문간에 발 들여놓기(Foot in the door) 기법을 쓰고 있다. 방문판매원들이 가정집을 돌아다니면서 영업할 때, 처음부터 본색을 드러내면 문전박대당하기 쉽상이다. 그러니 "물 한 잔만 마실 수 있을까요?", "화장실 좀 이용해도 될까요?"처럼 작은 부탁부터 제안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 쉽게 문을 열어주고, 그들은 집에 발을 들여놓는 그때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의도를 알아차리고 우리는 불쾌함을 느끼지만 쉽사리 거절하지 못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끙끙 앓는다. 길거리에서 스티커를 붙여달라는 행위도 자선 단체의 후원자가 돼 달라는 의도를 숨겨놓고 있다. 그렇지만 자원 봉사자들이 기부를 요청하는 행동이 나쁜 건 아니니,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 제 갈 길 간다.


 주로 강남을 가서 그렇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는 그들은 항상 있었다. 그들의 친절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대학생 때 봉사활동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학기 장학금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는 봉사활동 시간을 채워야 했다. 하기 싫었지만 1점, 2점이 아쉬웠기에 어쩔 수 없이 채우곤 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선단체 자원봉사자는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


야탑 역에서는 세 명의 여학생이 어떤 사람에게 거의 강요 수준으로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애교 부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3자 입장에서 봐도 정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좋은 일 하는데 그럴 수도 있지 뭐"하며 가볍게 넘겼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후원금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는 대행사 직원이었다. 친절한 미소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는 그들의 친절한 호객 행위가 점점 업그레이드된다.



Photo by Vladislav Klapi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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