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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Jul 11. 2019

필사한다고 내 문장이 달라질까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좋은 문장을 발견하면 바로 이 생각으로 직결된다.


"문장 좋다. 조금 이따가 필사해야지!"


필사가 습관인 적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버렸다. 일하다가 집중이 안 될 때, 필통에서 만년필을 꺼내 아침에 수집했던 그 문장을 필사노트에 손으로 느리게 한 번 읽는다. 그러는 사이 흐트러진 집중력은 다시 제자리를 찾아온다. 되찾은 집중력으로 하던 일을 계속 이어간다.



작년에는 책 『쇼코의 미소』 를 읽고 최은영 작가의 섬세한 문장을 닮고 싶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몇 번을 감탄했는지 모른다. '이 부분은 작가 이야기 같은데' 싶다가도 어느 순간 '이건 내 이야기 같은데'라는 생각에 뜨끔하곤 했다. 그녀의 문장을 닮기 위해 블랙윙 연필과 200자 원고지를 꺼냈다. 매일 꾸준히는 아니지만 잠들기 전에 1~3페이지씩 느리게 손으로 읽었다.



필사한다고 내 문장이 달라질까?


사실 이 생각이 필사하고 싶은 내 마음을 여러 번 가로막았다. 문장력을 키우려면 차라리 많이 읽고 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작가의 문장을 베껴 쓴다고 내 문장이 달라질까.


다른 사람의 변화는 쉽게 인지하지만, 자신의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어렵게 조금 인지한다. 책 『쇼코의 미소』의 문장을 필사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때쯤 내 글이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매일같이 먹던 음식의 새로운 맛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 어느 날 문득 그게 느껴졌다. 취업준비생 때 매일 같이 출근하던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하다가 항상 나를 가로막았던 PART7이 잘 풀리던 그런 기분이었다. (그 기분을 느낀 이후의 시험은 점수가 많이 올랐다.) 그 전에도 내 글을 읽었던 어떤 독자는 내 문장이 섬세하다고 말했지만 스스로는 그 느낌에 닿지 못해 괴리감을 느꼈다.    


책 『쇼코의 미소』는 긴 호흡으로 3개월 동안 필사했다면, 이성복 시인의 책 『무한화서』는 짧은 호흡으로 자주 쓴다. 필사의 꾸준함은 이러한 좋은 문장을 수집할 때 유지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이 담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요즘 책이 재밌는 이유다.



읽었던 책 중에는 선택을 잘못해 실패할 때도 많지만, 필사로 노트에 꾹꾹 눌러 담은 문장은 실패한 문장이 없다. 일상에서 틈틈이 쌓인 필사의 흔적을 다시 한번 살펴볼 때 전해오는 뿌듯함은 덤이다. 적당한 만년필 한 자루로 적당한 노트 한 권에 쓴 문장은 오늘도 내게 집중의 감각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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