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아닌 나의 욕망을 욕망하라
몇 년 전에 혜화 역에 위치한 벙커원에 강신주 철학자(이하 강신주)의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지금은 충정로역으로 위치가 바뀐 것 같다) 《강신주의 다상담 1,2》를 막 출간한 강신주는 이 날 '다 상담해주겠다!'는 마인드로 강연을 이어갔다. 사실 강연이라기보다 상담에 가까웠다. 참석한 사람들이 본인의 고민을 이야기하면 강신주가 대답해주는 식으로 상담이 진행됐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했는데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건 이혼을 고민하고 있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였다. 대략 내용은 이랬다.
"남들이 알만한 서울 소재의 대학을 졸업하고, 운이 좋게도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업했고, 비슷한 조건을 가진 남편을 만나 결혼했어요. 처음 1년은 행복했는데 지금은 이혼할지 말지 고민이에요."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아, 이제 신혼 2년차겠구나' 어림짐작했다.
강신주가 그녀에게 물었다.
"그 생각한 지 얼마나 됐어요?"
"5년이요.."
"그럼 지금 결혼 6년 차인 거네요?"
"네"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강신주는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아직도 고민해요?"
"이런 선택을 해본 적이 없어서 무섭다 보니.."
"살면서 본인이 좋아해서 선택해본 적 있어요?"
"사실.. 저는 지금까지 다 제가 좋아해서 했던 선택인 줄 알았어요. 이 대학에 오면 기쁠 것 같았고, 이 기업에 취업하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 남자랑 결혼해도 나쁘지 않겠다. 그런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제가 좋아해서 했던 선택이 아니더라고요. 그냥 저는 남들이 부러워하고, 인정해주면 기뻤던 거 같아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 어느 순간 이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왜 이 사람이랑 결혼했지?"
정략결혼도 아니었고, 본인이 선택한 결혼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강신주는 그 생각이 그녀가 자신의 결정권에 대한 첫 의견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이미 결혼 1년 차 때부터 이혼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이혼에 대한 사회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해 5년째 결단을 못 내리고 있었다. 말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개인의 성취감을 무시하는 인재 육성 시스템에 무조건 순종하는 태도는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뒤탈을 일으킨다. 특히 심각한 경우에는 자신이 진정성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고 깨닫는 순간 어쩔 수 없이 자기성찰적 의혹이 드는 위기를 맞는다. 이때 불가피하게 터닝포인트를 맞닥뜨리게 된다.
― 책 《다크호스》, 57p
지금까지 자신의 욕망을 묵살한 채, 부모와 주변인들의 욕망만 욕망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남일 같지 않았다. 우리는 유치원 문턱을 넘어선 첫날부터 은퇴하는 날 아침까지 인생행로가 표준화되어 있다. 누가 법으로 정한 것도 아닌데 학교를 다니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만이 정상적인 경로처럼 비친다. 이 경로가 어긋나는 순간 낙오자가 된 것 같다. 그래서 명절 때 친척들이 "취업은 했니?", "결혼은 했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라는 질문이 지금처럼 낙오자로 살지 말고 얼른 표준화 시대의 정상적인 경로로 들어오라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책 《평균의 종말》을 통해 '평균주의'의 허상을 까발렸던 하버드 대학원 교수 토드 로즈는 《평균의 종말2》라고 불러도 좋을 책 《다크호스》를 통해 표준화 시대는 '목적지를 의식하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끝까지 버텨라'는 메시지가 성공한 삶을 일구는 가장 확실한 전략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됐다고 주장한다.
"대학에 합격하고 나면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취업하면 지금 못 했던 거 원 없이 할 수 있어"
표준화 시대에서는 정상적인 경로에 따라 우수한 경지에 이르라고, 그러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개개인의 충족감이 뒤따른다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탈이 나고, 쓰러졌다. 본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호기심을 억제하면서까지 지금의 행복을 담보 삼아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버텼더니 돌아온 건 '성공'과 '행복'이 아니라 '우울증'과 '불안감'이었다.
표준 공식만 존재하던 사회에 점점 다양한 공식이 생겨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 본인만의 공식을 창조하고 있다. 낙오자가 되기를 두려워해서 본인의 욕망을 억압한 채 누가 설정해놓은지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전력 질주했던 사람들은 이제는 '나는 나대로 살겠다'를 선언하며 대학에 가지 않겠다. 취업하지 않겠다. 결혼하지 않겠다. 아이를 낳지 않겠다며 본인 삶에 맞는 목표를 설계한다. 그들에게는 '부', '명예'와 같은 사회적 성공보다 '행복', '만족'과 같은 개인화된 성공이 훨씬 중요하다. 어쩌면 그게 더 큰 성공일지도 모르겠다.
선택은 적극적 행위다. 선택의 자유가 있으면 자신의 기회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아무도 주목하지 못할 만한 기회들까지도 가능해진다. 고르기는 수동적 행위다. 제공된 선택지에서 고를 때는 다른 누군가는 이미 선택다운 선택을 했는데 당신은 제공받은 초콜릿 상자에서 초코 캔디 하나를 고르고 있는 셈이다.
― 책《다크호스》, 57p
다시. 강신주와 상담했던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녀는 지금까지 본인이 선택했다고 믿어왔지만 사실은 이미 제공받은 초콜릿 상자에서 초코 캔디를 하나 고르는 데 불과했다. 그녀는 몇 년이 지난 지금 과연 이혼했을까? 아니면 여전히 자신의 의견은 묵살한 채 남들에게만 인정받으며 살고 있을까?
참고 도서
책 《다크호스》, 토드 로즈 ˙ 오기 오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