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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Aug 22. 2019

이제 어떤 발표도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책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을 읽고

여전히 내 앞가림도 잘 못하는데 어찌어찌 몇 년째 자기계발(바인더, 독서)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전까지 어떤 작은 모임에라도 참여해본 적 없고, 낯선 사람 만나는 것을 반기지 않던 내가 모임을 이끈다는 건 큰 도전이었다. 일을 벌이기 전에 항상 끝을 상상한다. 모임이 반년만 지속된다면 그래도 꽤 많은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스스로 6개월을 각오했으니, 블로그에 올린 모집글을 보고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그 시간만큼은 이탈하지 않고 함께해주길 내심 바랬다. 그렇게 어느덧 4년이 지났다.


남들 앞에 서면 심장이 요동치는 바람에 발표하기를 두려워했던 나는 이제 어떤 발표도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망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을 땐 눈앞에 있는 청중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백지가 된 생각이 다시 살아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책 《콰이어트》에서 등장하는 브라이언 리틀 교수는 많은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나면 휴식을 위해 화장실에 숨는다고 했다. 나는 리틀 교수처럼 행동해 본 적은 없지만 책 속에서 그의 휴식법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던 건 같은 내향인으로써 그런 기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내향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전에 썼던 다른 글 <자기소개는 두렵지만, 새로운 사람은 만나고 싶어>도 읽어보면 좋다.) 내향적인 사람은 사람들을 만나고 난 이후에 혼자만의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모임 초창기에는 모임이 끝나고 약속을 거의 잡지 못했다. 끝나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집으로 곧장 가서 낮잠으로 에너지를 보충해야 했다.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일의 연속이다. 모임을 하다 보면 발표를 맡은 사람이 갑자기 개인적인 이유로 불참을 통보하거나, 기껏 고민해서 뽑은 사람이 첫 모임 전에 마음이 바뀌어서 하지 않는다고 하거나, 말만 번지르르하고 행동은 무책임한 사람의 뻔뻔함까지 예상치 못한 다양한 케이스를 만난다. 항상 어느 정도 예측은 하지만 실제 벌어지는 사건은 '겨우 그 정도밖에 생각하지 못한 거야?'라고 비웃으며 생각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덕분에(?) 몇 년간 수차례 멘탈이 터지고 나서야 불확실한 상황을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정신줄을 놓으며 불확실한 삶을 즐기고 있다. (아마 모임을 하면서 얻은 경험 중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불확실한 삶을 즐기면서 가장 좋아진 건 사소한 것부터 의심하고 행동하기 주저하던 습관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머릿속에만 머물던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막상 실행으로 옮겼을 때,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수차례 경험한 이후에는 생각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과거에 행동했던 경험을 믿는다. 그 경험은 느낌이 아닌 기록에서 온다. (사람은 믿게 되는 순간부터 의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 글쓰기와 기록은 습관을 뛰어 넘어 생활이 되었다.)


모임을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강점 검사(Strength Finder 2.0)를 세 번 실시했다. 책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에 동봉된 강점 검사지는 온라인에서 약 30분간 검사를 실시하고 나면 34가지 강점 중에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 5가지를 보여준다. 지난 세 번의 강점 검사에서 '책임''집중'은 항상 있었다. (그 외에는 자기확신, 최상화, 정리가 나왔다.) 검사를 처음 했을 때는 모임장이라면 당연히 책임을 강하게 느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쉽게 넘겼다. 하지만 지금은 '책임' 덕분에 지금까지 무사히 모임을 이끌어왔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안다. 모든 모임장이 책임감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나처럼 '책임'을 강점으로 갖고 있는 사람은 책임지는 자체를 본인의 평판으로 연결 지어 생각해서 맡은 일은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을 볼 때도 책임감을 없는 행동을 하면 굉장히 부정적으로 반응한다.)


'집중'은 내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살기 위해서) 명확히 구분 지었다. 모임을 운영하는 건 의외로 손이 많이 간다. 회사 일이 바쁘지 않거나 컨디션이 좋을 땐 견딜만했지만, 야근이 몰리거나 한 번씩 열정이 식을 때면 굳이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받으면서까지 고생해야 하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집중'은 앞으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무엇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가는 출구를 알려줬다. 두 번째 강점 검사까지는 '책임'과 '집중' 덕분에 모임을 지금까지 이끌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 번째 검사에서 다시 두 녀석을 발견하고는, 어쩌면 내가 모임을 잘 이끌기 위해 다른 강점보다 '책임''집중'을 더 발휘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에 처음 실시했던 강점 검사에서는 '개별화''존재감'이 있었다. 그때는 사람들 이야기에 집중하고, 그들의 재능(강점)을 발견하며 북돋아주는데 재미를 느꼈다. 나 역시도 내 강점을 남들에게 인정받으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모임 초기에는 컨텐츠가 하나도 없다 보니 퇴근 후 집이나 카페에서 자료 만들고 잠들기 바빴다. 그때는 퇴근 후 시간을 발표 자료 만드는데 몽땅 쏟아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지금은 그 두 강점이 사라졌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그때처럼 절대! 못한다.)


'최상화'는 내가 가진 강점 중에서도 끝판왕이자 양날의 검이다. 잘하는 사람을 더 잘하게 만드는데 흥미를 느끼지만, 못하는 사람을 잘하게 만들기는 힘든 강점이다. 즉, 이미 글을 쓰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아직 블로그를 운영하지 않거나 독서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적다. (흥미를 못 느낀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모임을 강하게 끌고 가고 싶은 욕구도 '최상화' 강점에서 발동한다. 책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으로 독서모임 했을 때 어떤 분이 '최상화'를 표현하기를 고장 난 사람 고치는데 관심이 없는 유형이라고 하셨다. 그 표현이 정말 정확하다. (고장 난 사람을 고치는 건 '복구' 강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몫이다. 만약 조직에서 리더가 '최상화'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바로 아래에 '복구' 강점이 있는 사람을 데리고 있어야 탈이 안 난다.)


사람은 '약점'을 먼저 생각하고 '의지'부터 사용하는 게 디폴트(기본값)다. 하지만 자신에게도 '강점'이 있다는 사실과, 때로는 '의지'보다 '환경 설정'이 본인을 변화시킬 확률이 더 높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4년 전으로 돌아가, 내가 예전처럼 약점에만 집중했다면 강점을 발견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발견했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늦게 발견했을 것이다.) 그때 어떤 마음으로 인해 모임을 시작할 수 있는지 지금의 나는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달라졌고 아마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변화할 예정이다. '집중''책임'은 앞으로도 나를 대변하는 강점으로 계속 살아남을 것 같지만, 그 외의 강점은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변하고 있다.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지금도 변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잔잔한 호수에 돌 던지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작은 돌이라도 던지는 순간 호수에는 파동이 일렁이기 마련이다.

 


Photo by Linus Nylun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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