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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용마 Sep 01. 2019

아이에게 아이패드부터 쥐어주면 안 되는 이유

선택의 문제가 아닌 순서의 문제

독서할 때 멀티태스킹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왕복 두 시간이 넘게 걸리는 출퇴근길에 독서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하는 일은 가방에 스마트폰을 숨기는 일이다. 예전에는 손에 들고, 주머니에 넣어두고 책을 읽어봤지만, 알람이 울리거나 '스마트폰'이 나한테 있다는 감각이 느껴질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꺼내본다. 독서 중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면 그 시간이 '잠깐'일지라도 다시 책으로 집중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어떨 때는 책과 스마트폰의 역할이 바뀌어서 손에 책을 들고 인터넷만 하다가 그대로 목적지에 내린 적도 있었다.


여기서 잠깐 내 독서 역사를 살펴보자. 처음에는 종이책만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리어답터인 주변 사람에게 '전자책으로 읽으면 언제 어디서나 여러 권의 책을 가볍고, 쉽게 볼 수 있다고 하더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흥선대원군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신문물인 전자책의 유혹에 잠시 흔들렸지만, '아직 전자책이라는 신문물을 받을 때가 아니다. 책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제맛이지!'라고 외치며 쇄국 정책을 고수했다. 


하지만 전자책을 알게 된 대가는 컸다. 그 날 이후 가방에 넣고 다니는 종이책은 유독 무겁게 느껴졌고, 들고 나온 책이 재미없으면 '아. 집에서 다른 책 들고 올 걸. 아니지. 전자책이면 바로 다른 책 읽었겠지?'라고 생각하며 후회하기 바빴다. 주변에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이 책 저 책을 읽으면서 독서에 불붙은 사람들을 여러 차례 보게 되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전자책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전자책은 신세계였다. 종이책보다 30% 저렴했고, 택배 아저씨를 기다리는 설렘은 사라졌지만 구매 즉시 읽을 수 있었다. 지금은 90일 대여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10년 대여(말이 10년이지. 거의 구매나 다름없었다. 물론 대여나 구매하나 안 읽는 건 마찬가지지만)로 거의 반값에 빌릴 수 있었다. 그래서 괜찮아 보이는 책들은 스펀지처럼 카트에 쫙쫙 빨아 담은 후에 구매 버튼을 살포시 눌러 전자 서재에 차곡차곡 쓸어 담았다.


2027년이 오긴 올까

하지만 장점도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 캘리포니아-어바인 대학의 글로리아 마크 교수는 어떤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이 방해를 받는다면, 다시 그 일에 돌아와 집중하는 데에만 무려 23분 15초가 걸린다고 했다. 회사에서 집중해서 일하고 있는데 중요하지 않은 이메일 알람, 자기 자리로 부르는 상사, 차 마시러 가자는 동료는 고작 몇 초에서 몇 분 정도 시간을 뺏은 것에 불과하지만 다시 지금의 상태로 돌아오기까지는 20분이 넘게 걸린다. (여기서 얻은 교훈은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동료나 부하들을 사소한 이유로 건들지 말자)


"오늘 류현진 경기네. 이기고 있나?"

"요즘 꿀잼인 워크맨 영상 새로 올라왔나?

"카톡 새로 온 거 있나? 브런치 알람은?"


스마트폰은 이메일, 상사, 동료의 역할을 모두 거뜬히 해낸다. 책을 읽다가도 드는 다양한 생각과 다른 사람이 보낸 카톡 알람에 주의가 끊임없이 분산되면서 정신 차리고 나면 이미 책은 뒷전이고 딴짓하고 있기 바빴다. 그렇다고 알람을 끄자니 중요한 연락이 올 것만 같아 불안해서 집중이 더 안 되는 것만 같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전자책의 장점을 활용하면서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 제약수 있는 전자책 리더기를 구입했다.


책 《다시 책으로》를 쓴 메리언 울프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크린으로 읽을 때는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90퍼센트인 반면, 인쇄 매체로 읽을 때는 그 가능성이 1%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전자책이라는 신문물을 접한 나는 전자책의 편리함과 멀티태스킹의 부작용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지금은 종이책 1권과 전자책 리더기를 항상 들고 다니며 상황에 맞게 읽는다. 둘 다 가지고 나오지 않았거나, 책 내용을 빠르게 참고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라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책 읽는 일은 거의 없다. 독서할 때 멀티태스킹은 지옥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아이에게 아이패드부터 쥐어주면 안 되는 이유

주말에 글을 쓰기 위해 집 앞 스타벅스에 가면 아이를 데려온 부모들을 심심찮게 본다. 유아용 의자에서 앉아 있는 아이부터 넘치는 흥을 주체하지 못해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공포의 4살(?)까지. 문제는 조용히 앉아만 있으면 아이가 아니라는 것. 카페에 놀러 온 아이들은 조용히 있다가도 울거나,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면서 카페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아이들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부모들은 바로 아이패드를 꺼내 '뽀로로' 또는 '핑크퐁'과 같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상을 틀어주고 아이를 쉽게 달랜 후, 다시 제 할 일을 이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패드는 아이를 가장 달래기 좋은 최신 장난감이자 보모로 등극했다. 디지털 보모는 바쁜 부모를 대신해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영상을 보여주면서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든다. 하지만 이게 과연 좋은 방법일까?



모든 연령층이 보이지 않는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지만 아주 어린아이조차 평소 디지털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았을 경우에는 기기를 빼앗기면 지루함이나 따분함을 크게 느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기기를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온 가족이 오락과 정보, 주의분산의 디지털 원천에 접속돼 있는 주기도 길어지고, 의존도도 높아지게 되지요. 

― 책 《다시 책으로》, 메리언 울프


디지털 자극으로 울음을 뚝 그친 아이는 이제 아이패드를 제외하고 어떤 방법으로도 달래지 못한다. 그 아이에게는 아무리 재밌는 책이나 장난감도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기기만큼의 자극이 되지 않는다. 인지신경학과 아동 발달학을 연구하고 있는 메리언 울프 교수는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 아이패드부터 쥐어주면 안 되고, 아이패드와 같은 디지털 기기를 봉제 인형처럼 침대 옆에 둘 수는 있지만, 아이에게 전부가 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럼 여기에서 부모들의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안 되는 건 알고 있지만, 평일에는 일하느라 바쁘고, 주말에는 피곤해서 아이 옆에 붙어 하나하나 챙겨가면서 돌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아이패드까지 보여주면 안 된다니. 부모가 슈퍼맨이 되라는 이야기인가 싶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순서의 문제

메리언 울프 교수는 이어서 부모들이 아이가 크는 동안 수십 년 동안 슈퍼맨이 될 필요는 없지만, '깊이 읽기 과정'을 형성해야 하는 어린 시절의 몇 년 동안은 부모가 직접 시간을 들여 책을 읽어주는 슈퍼맨이 되기를 강조한다. 아이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다고 해서 언어를 처리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아주 초기에도 마찬가지다. 그때부터 부모는 아이 옆에 붙어서 디지털 기기를 쥐어주는 대신 무릎에 아이를 앉혀두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줘야 한다. 읽어주는 동안 부모와 아이 시선의 일치감은 어린아이들의 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때는 부모의 품 안에서 아이는 별다른 노력 없이도 호기심과 탐색적인 행동을 조금도 잃지 않은 채, 부모가 바라는 것에 자신의 시선을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그 방법을 익히고 나면 그 이후에 조금씩 아이들에게 아이패드를 건네면서 처음에는 짧은 시간 동안만 탐구하게 하고, 점차 사용 시간을 늘려가며 2~3세 아이에게는 하루 몇 분에서 시작해 30분 정도까지 늘려간다. 좀 더 나이가 들면 사용 시간도 늘어나겠지만, 그래도 하루 2시간 이상은 넘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입학 후 첫 몇 년 동안은 종이책과 인쇄물을 주로 사용해 읽기를 가르치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와 아이가 인쇄물로 읽는 것은 읽기에서 핵심적인 시간적, 공간적 차원을 강화하고, 어린 읽기 회로에 중요한 촉각적인 연상을 더하며, 최고의 사회적, 정서적 상호작용을 제공합니다. 교사와 부모는 가능할 때마다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통해 아이는 자기 자신의 배경 지식을 책에서 읽은 것과 연결시키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관점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고, 스스로의 추론을 통해 자신의 분석과 반성과 통찰을 표현하기 시작합니다.

― 책 《다시 책으로》, 메리언 울프 


종이책은 좋고, 전자책은 나빠서 무조건 종이책만 읽게 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순서의 문제는 있다. 전자책은 형식 자체가 아이들의 '깊이 읽기 과정'이 형성되기도 전에 이야기책과 함께 읽기라는 개념을 흔들어놓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아이들의 이해력 외에도 다른 것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디지털 자극에만 편중되어 있지만, 어떤 아이들은 종이책과 태블릿 두 가지 다 편하게 활용한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이 책에서 메리언 울프가 계속해서 제기했던 우려의 여지가 적다. 이 아이들은 '양손잡이 읽기 뇌'를 통해 균형을 찾은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이러한 균형 잡기 위해서는 '깊이 읽기 과정'을 형성해주려고 노력하는 부모와 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디지털 자극부터 접한 아이들은 '깊이 읽기 과정'을 형성하려면 엄청난 비용이 따르지만, '깊이 읽기 과정'부터 형성한 아이들은 언제든 다시 균형으로 돌아갈 것이다.


※ 주의 : 아이는 여러분이 기대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도서 

책 《다시, 책으로》, 매리언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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