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용마 Sep 09. 2019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아질 것이다.


퇴근 후 대형마트에 들른 이 남자는 오늘 저녁에 초밥을 먹기로 결심합니다. 며칠 전에도 먹은 것 같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다시 먹기 마련이죠. 어쨌든 이 남자는 한 정거장 일찍 내려 자주 가던 대형 마트의 초밥 코너로 향합니다. 어? 근데 오늘 노르웨이산 연어가 싸네요. 잠깐만요. 제주산 흑돼지도 신선해 보이고요. 아주머니가 지금 사면 30% 할인해준다고 찌개용? 구이용? 얼른 결정해서 가져가랍니다. 능수능란하게 보기를 던져서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아주머니의 판매 스킬에 잠시 '구워 먹을까?' 혹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원래 목적지인 초밥 코너로 향합니다. 막상 초밥 코너에 도착하니 바로 구입하기에는 뭔가 아쉽습니다. 그래서 구입을 잠시 미루고 괜찮은 저녁거리가 있는지 마트를 한 번 쫙 돌아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잠깐. 오늘 월급이 들어왔습니다. 이 날만큼은 손가락만 까딱해도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루이 14세의 기분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오늘만큼은 왕이 된 이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초밥은 잊고 미국산 소고기 코너 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인 2008년. 갓 대학에 들어왔던 이 남자는 광화문에서 열렸던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반대'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고 저렴해도 절대 먹으면 안 된다고 난리부르스를 피웠는데 지금은 없어서 못 먹습니다 이 남자뿐만 아니라 그때 시위에 참여했던 수많은 사람들도 이제는 저렴하게 맘껏 먹을 수 있는 미국산 소고기를 즐겨 먹고 있지 않을까요?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린다는 속설처럼 비관주의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득세했습니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드 밀은 "많은 사람에게 현자로 칭송받는 것은 남들이 절망할 때 희망을 품는 사람이 아니라 남들이 희망을 품을 때 절망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영국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 또한 책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 시대에 따라 비관주의는 언제나 유행했고 1960년대에는 인구 폭발과 세계적 기근이 목록의 가장 위에 있었고, 1970년대에는 자원 고갈이, 1980년대에는 산성비가, 1990년대에는 세계적인 유행병이, 현재는 지구 온난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영국 통계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책 《인구론》에서 "인구 증가 속도를 식량 생산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라고 미래를 비관적으로 예측했습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갓서스라고 칭하며 그 이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인구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기도 했죠. 하지만 그 결과 현재 세계 곳곳에서는 지독한 저출산율의 늪에서 허우덕거리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저출산하면 어딜 가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표적인 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베이비 붐 세대(1946년~1964)부터 정부는 1980년대 이르기까지 이대로 가다가는 다 굶어 죽는다며 인구 증가에 따른 비관주의를 앞세워 출산율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출산제한 슬로건도 기가 막혔죠. 1960년대에는 '덮어 넣고 낳다 보면 거지 꼴을 못 면한다', 1970년대에는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1980년대에 들어서는 '둘도 많다'라는 식으로 말이죠. 그 결과 대한민국은 1970년에 4.53명에 달하던 출산율이 2018년에 0.98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오판을 했던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부터 약 152조 원의 예산을 저출산 대책에 투입했지만 효과는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어찌 보면 비관주의가 낙관주의보다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건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비관주의는 근거가 없어도, 0.000001%의 가능성만 있어도 일단 사람들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로 듣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말이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다'보다 더 신뢰가 가는 법이죠. 지금은 쏙 들어간 산성비 공포도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도 "비 올 때 우산 안 쓰면 머리카락이 녹는다"는 루머가 퍼져서 비 맞으면 마치 머리에 염산 들이붓는 것처럼 큰 일이라도 벌어질 것처럼 난리를 떨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그런 걱정을 하는 자체가 실제로 비 맞는 것보다 탈모에 더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라고 했던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고전 경제학에서 300년 넘게 당연한 사실로 굳어져왔지만, 2002년 '행동경제학'으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 교수가 내놓은 전망 이론*(Prospect theory: An analysis of decision und er risk econometrica)으로 고전 경제학은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전망 이론을 쉽게 표현하면 이렇다. 인간은 주식 투자로 1달러를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보다 1달러를 잃었을 때 훨씬 큰 괴로움을 느낀다.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면 1달러를 벌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잃었을 때 느끼는 괴로움이 똑같아야 한다. 하지만 왜 사람들은 기쁨보다 괴로움을 더 많이 느낄까. 인간은 늘 합리적인 존재라고 알려져 있는데 왜 사람들은 비합리적이고 편향적이며 오류투성이 행동을 서슴지 않을까.

출처 : 주류 경제학 ‘구멍’ 파고든 ‘행동경제학’ 창시자(링크)


인간은 1달러 얻는 기쁨보다 1달러를 잃는 슬픔이 더 크기 때문에 손실회피 성향, 즉 비관주의에 더 끌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덕분에 부정적인 뉴스가 긍정적인 뉴스보다 더 잘 팔리는 법이죠. 심지어 2년 전, 제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중앙일보에서 이런 어이없는 기사가 등장해 많은 화제를 끌기도 했죠. 지금 봐도 기가 찹니다.


  

매트 리들리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아닌 이성적 사고를 가진 낙관주의라면 낙관주의도 나쁠 건 없다며 책 《이성적 낙관주의자》에서 번영, 집단지능, 교환, 인구, 도시, 에너지, 발명, 기후 등의 주제로 앞으로 우리 세상이 지금보다 더 낙관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는 근거를 앞세워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2019년 현재를 지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루이 14세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며, 노동의 분업화와 발명의 고도화로 인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부유해질 것이라며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식량, 인구, 바이러스 등의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했지만 화학 비료, 백신 등을 찾아내며 혁신적인 답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걸까요? 몇십 년 뒤에 석유가 고갈되고, 지금처럼 에너지를 낭비했다가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인간은 혹독한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는 비관주의자의 예측에 영화 《인터스텔라》의 포스터에 적힌 카피가 떠오릅니다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건 그렇고 놀란 형님 재개봉 좀 해주세요


참고 도서

책 《이성적 낙관주의자》, 매트 리들리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에게 아이패드부터 쥐어주면 안 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