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의 회복
그가 의식을 잃은 것이 1월, 퇴원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이 3월 즈음이었다.
친구 C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대학병원은 소위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면' 되도록 퇴원절차를 밟게 한다고 하였다. 그 정도 상태가 되면 또다른 걷지도 못할 수준의 위급한 환자를 빠르게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응급 중환자실로 떠밀려와 언제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환자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긴 환자 중 가장 위급하고 젊은 환자에서
퇴원하기까지의 시간은 돌이켜보면 엄청난 속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젊어서 가능한 회복력이었다 볼 수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간이식을 받은 만큼,
급속도로 생사의 길을 걷게 된만큼,
뇌사자의 간을 받을 1순위로 선정될 수 있었으며
(아무래도 잘 회복될 확률이 높고, 위급한 순위로 선정하기 때문에)
회복 속도 또한 다른 나이에 비해 월등한 것이었다.
빠르게 회복된 만큼 나의 일상도 빠르게 안정되어 갔다.
그의 고향은 원래 살던 지역과 편도로 1시간 40분 남짓 되었으며,
버스를 이용해서 오가는 것이 가장 편리했다.
나는 그렇게 주말마다 그의 고향으로 출근도장을 찍었다.
그의 성화에 아침 8시10분 버스에 올라타 다음날 저녁 7시정도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해맑은 그가 조금 부러웠다.
원체 걱정이 많은 성격인 탓도 있지만 나의 불안은 그때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와 즐겁게 이틀을 보내고 난 후, 돌아가는 버스에서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그가 복용가능한 면역억제제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는 모양이었다.
가장 안전하기로 평가되는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던중,
어느날 그는 나에게 약이 바뀌었다는 연락을 했다.
가장 안전한 그 면역억제제 또한 부작용이 존재했는데, 신장기능이 약화될 가능성이 있었고
그가 복용하는 동안 신장수치가 좋지 않아 2순위 약을 한동안 복용하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이 말을 전했지만 나는 그날 내내 그 생각에만 사로잡혀 하루를 보냈다.
그저 복용하는 약만 바뀌었을 뿐인데 나는 그 사실만으로 불안정해져버렸다.
이는 돌이켜 생각하면 전혀 다를 것 없던 어느날 그가 의식불명이 된 것이 경미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것 같다.
갑자기 찾아오는 천재지변처럼 어떤 전조증상 없이 엄청난 불행이 찾아왔으니까.
약 하나만 바뀐 사실에 온갖 걱정이 생기는 것이다.
어느 날은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던 중이었다.
40대 미혼 여성 세네명이 모여 자조적인 토크를 하는 영상이었는데,
젊었을 때는 외모, 재력, 성격 등 깐깐하게 보았지만
이제는 이 질문만 한다고 말하고는 모두가 깔깔대며 웃었다.
그 사람 건강해?
나는 그 릴스를 보고 엉엉 울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었지만 그냥 무방비한 상태로 눈물이 났다.
회복에 집중하는 그에게 이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그저 회복만 생각하고, 밝게 지내는 것이 좋으면서도
모순적이게 내 맘을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랐다.
털끝만큼이라도, 옆에 같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위태로운 나를 알았으면.
그러나 그는 나에게 자주 결혼에 대해 이야기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 그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큰 문제가 생기고 계속 옆자리를 지켜준 나와 당연히 결혼할 줄 알았다고 하였다.
나는 한동안 이 간극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