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을 결정한 어느 아침 풍경
오전 일곱 시. 아직도 어두컴컴하고 분주했던 어느 가을 월요일이었다. 깊이 잠든 제이를 여러 차례 불러 깨워서 옷을 입히고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엔진을 예열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차를 몰아 제이를 처가에 데려다주며 인사를 건넸다.
“제이야. 학교 잘 다녀와. 사랑해. 밥 잘 먹고 양치 잘해. 들어가.”
꼭 안아주는 건지 뒷목을 조르는 건지, 잠시 내게 대롱 매달려 있던 제이는 아빠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문을 빠끔히 열고 인사를 건넸다. 퇴근 후엔 별로 반가워하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아침에는 다정해지는 미스터리한 제이를 뒤로하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아내 회사로 향했다.
복잡한 출근시간에는 내비게이션을 켜는 것은 필수다. 도착 예정 시간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 핸들에 힘을 주었다. 상대적으로 붐비지 않는 주택가 우회 도로로 다니는 것은 출근 경로가 복잡한 상황에서 필수다.
오늘도 비슷한 시간에 한적한 주택가 골목길에 들어서자 항상 비슷한 위치에서 비상 깜빡이를 켜 놓는 자동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빌라 앞 계단에서 세 살 남짓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를 맡기는 부부의 모습이다. 모르는 사람인데 자주 보다 보니 왠지 아는 사이 같기도 하고 묘한 동료의식도 생겼다.
출근하는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싫은지 뚱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애틋하다. 그 아이 옆에 서서 부스스한 모습으로 노란색 어린이집 가방을 왼쪽 어깨에 능숙하게 걸치고 한 손으로는 아이 손을 잡고 있는 분은 할머니겠지. 출근길에 아이를 부모님에게 맡기는 맞벌이 부부의 익숙한 이른 아침 풍경이다. 제이랑 사정이 비슷한 아이일 것이다. 처음 봤을 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 같던 아이가 이제는 제법 제 몸을 잘 가누며 인사하는 모습이 의젓해 보였다.
“와. 쟤 벌써 큰 거 봐. 조그마한 게 아침부터 고생하네.”
“고생은 할머니가 하는 거지.”
“아… 그렇네. 쟤는 제이보단 낫네. 이 동네로 오기 전까지 우리는 저런 생활 엄두도 못 냈지.”
“힘들어도 아이는 엄마 아빠랑 같이 자고, 일어나고, 밥 먹고 해야 하는데… 너무 우리 중심으로 살았지.”
“여보, 전화해야지.”
“아, 깜빡했다.”
출발 후 5분 정도 지난 시간, 아이에게 전화를 한다. 미처 잠이 덜 깬 상태로 외할머니 집으로 가야 하는 제이를 다독여주기 위한 안부 전화다. 학교 담벼락 뒤에 살면서도 정작 자기 집에서 등교할 수 없는 제이에게 미안해서 언제부턴가 할머니 집에 내려주고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도 빼먹을 수 없고, 빼먹어도 안 되는 일종의 의식처럼 자리 잡은 전화 한 통이었다.
“하루 잘 보내요. 조심히 다녀요. 선생님 말씀 잘 들어요. 친구들하고 잘 지내요. 학원 잘 다녀와요. 저녁에 만나요. 사랑해요” 등의 이야기는 매일 반복된다.
아내와 나는 거의 똑같은 말로 제이에게 순서대로(이 순서는 언제나 동일) 인사를 전한다.
흥미롭게도 제이의 반응은 각기 다른데, 예를 들어 엄마가 “사랑해~”라고 하면 “응, 나도 사랑해~”라고 답하고 아빠가 “사랑해~” 하면 들릴 듯 말 듯 “어’”고 답하거나 묵음 처리를 하는 식이다. 아빠에게도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은 해줄 법도 한데... 꽤 일관성이 있는 아이다.
아내의 회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오늘 저녁 각자의 일정을 재확인했다. 아내는 갑자기 해외 파견 가시는 분이 생겨 송별 회식이 잡힐 수 있다고 했다. 회식을 하게 될 경우에는 내가 먼저 퇴근해서 제이를 픽업하기로 저녁 일정을 정리했다.
회식 이야기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인사평가 시즌을 앞두고는 절대 회식을 빠져서는 안 된다는 식의 철 지난 불문율을 이야기하면서 맞장구치고 키득거렸다. 집에서 조금 늦게 나선 탓도 있고 마침 월요일이라 광화문 인근 도로가 꽉 차 있었다. 경복궁역 앞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사이, 아내의 눈치를 살피면서 라디오 볼륨을 조금 낮췄다.
“나 있잖아. 여보, 할 말 있어.”
“뭐? 술 약속? 일정 있으면 가. 내가 최대한 일찍 일어날게.”
“아니, 그거 말고…. 나 어떻게, 육아휴직 쓸까?”
“난 또 뭐라고. 쓰라고 했잖아. 뭐, 걱정돼? 책상이라도 없어져?”
“아니, 자기 연말에 승진도 해야 하고, 내년에 우리 목돈 필요한데 경제적으로 부담도 되고.”
“일단 써. 제발 써. 안 되겠으면 좀 일찍 복귀하면 되잖아. 그럼 되잖아.”
“그렇지? 역시…. 자기 꼭 승진해.”
육아휴직 사용 기한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어서 이미 여러 차례 고민을 이야기했던 터였다. 그때마다 “자기에게도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확신에 차서 내 생각을 지지해줬던 아내였다.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많았기에 선뜻 결심할 수 없었다.
출근시간에 임박해서 겨우 아내 회사 앞에 도착했다. 내리기 전 “한 번만 더 육아휴직 쓸지 말지 고민할 거면 죽음”이라는 말과 함께 시크하게 회사로 향하는 아내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좀비처럼 퀭한 상태로 회사 앞 골목길을 침투해오는 수많은 고등학생 사이를 조심스럽게 빠져나온 뒤 오늘 아침의 세 번째 목적지인 나의 회사로 향했다.
아, 그리고 다행히 아내는 연말에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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