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신들이 시지프에게 내린 벌은 무의미한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하는 것이었다. 올리자마자 다시 떨어지는 바위, 시지프는 굴러간 바위를 잡으러 터덜터덜 내려간다.
그럼 제 발로 박사에 입학한 대학원생에게 내려진 벌은 무엇일까?
때는 바야흐로 2022년, 나는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교수님의 박사 권유와 꽤 잘 썼다고 생각한 석사 논문으로 자신감은 하늘까지 올라 간 상태였다. ‘상큼하고’(교수님이 늘 강조하시는!) 기발한 논문 주제를 찾아내고, 연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젊음 빼면 시체였던 그 시절, 넘치는 패기로 호기롭게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박사 선생님들은 너무 똑똑하고 멋있어 보였고, 박사가 되면 나도 그렇게 될 줄 알았더랬지.
그로부터 이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냥 천방지축 어리둥절 박사 연습생이다.
그래서 박사과정, 그것도 인문대 박사에게 내려진 벌은 무엇일까?
공부한 자료들의 십분의 일은커녕 백분의 일도 활용하기 힘들다는 것? 저명한 사상가들의 통찰에 감탄하며 나의 무지를 처절하게 깨닫는 것? ‘상큼’ 하지 못한 논문을 탓하며 끝도 없이 주제를 수정하는 것? 교수님의 피드백에 따라 연구 내용의 절반은 폐기하는 것?
정답은 당연히 ‘모두 다’이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연구시간은 늘 모자라고, 잘하고 싶은 욕심에 더욱 쪼그라드는 박사연습생 김씨.
시지프 신화를 읽으며 되고 싶었던 것은 행복한 시지프였는데. 바위를 굴리고 다시 내려오는 휴지의 순간에 시지프는 행복하다던데!
비전일제 대학원생은 모든 게 힘이 들지만 행복한 시지프라도 되고 싶어 글을 쓰기로 결심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우당탕탕 박사연습생도 언젠가는 진짜 박사가 되어있지 않을까?
눈물, 짠내, 단내가 뒤섞인 박사연습생 김씨의 연구일지는 지금부터이다.
p.s. 세상 모든 대학원생들을 응원합니다! 우리 힘빼고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