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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절에 ‘공문’을 보내는 이유

복사기에서 인쇄물을 꺼내다 무심코 섞여 있던 종이 한 장을 집어 들었다. 팩스로 수신된, 다른 절에서 온 문서였다.


[수신: 전등사 주지 스님 / 발신: OO사 / 제목: 성지순례 협조 요청의 건]


형식은 더할 나위 없이 딱딱했다. 상단에는 '문서번호', '시행일자', '수신' 같은 항목들이 기계적으로 찍혀 있었고, 내용은 "삼보에 귀의하며 귀 사찰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라는 상투적인 문구로 시작되었다. 우리가 흔히 회사나 관공서에서 보던, 건조하고 격식을 갖춘 전형적인 공문 양식 그 자체였다.


20240620_110059.jpg 건봉사 전경


하지만 그 딱딱한 틀 안에 담긴 내용은 사뭇 달랐다. 본 사찰의 신도들이 귀 사찰을 참배하러 가니, 주차나 안내 등 편의를 봐달라는 정중한 부탁이었다.


회사 다닐 때 나에게 ‘공문’이란 차가운 것이었다.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고, 업무를 지시하거나 통보하는 딱딱한 서류. 하지만 절에서 마주한 공문은 온도가 달랐다. “저희 식구들이 그곳으로 갑니다. 따뜻하게 맞아주세요.”라는 다정한 편지 같았다. 주임님께 여쭤보니, 그저 오랫동안 이어져 온 통상적인 관례라고 하셨다. 특별한 의미 부여보다는, 늘 해오던 행정 절차 중 하나라는 뉘앙스였다. 나 역시 처음엔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어느 날, 나에게도 미션이 주어졌다. 전등사 신도님들을 모시고 강원도 고성의 건봉사와 금강산 화암사를 다녀오는 성지순례 기획이었다.


화암사라니. 그곳은 예전에 머리가 복잡해서 혼자 템플스테이를 떠났던 곳이었다. 좋았던 기억이 있던 그곳을, 이제는 스님을 모시고 수십 명의 신도들을 인솔하는 ‘종무원’이 되어 간다니. 반가움 뒤로 묘하게 어색하고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현실적인 업무가 시작되었다.


나는 내 자리에 있는 전화기의 수화기를 들고 ‘절의 행정 프로세스’를 밟기 시작했다. 먼저 방문할 종무소에 전화를 건다. 방문 의사를 밝히면 팩스 번호를 알려주시고 나는 “몇 월 며칠, 인원 몇 명, 대중 공양(식사) 가능 여부 확인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을 넣어 공문을 작성해서 보낸다.


공문을 작성하고 팩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알게 되었다. 이 건조한 관례 속에, 전국에 흩어진 사찰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내 절, 남의 절 가리지 않고 서로 방문하여 기도하고 수행하는 문화. 이 종이 한 장이 오고 가는 과정은 단순한 예약 확인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절이 ‘불교’라는 이름 아래 서로를 배려하고 문을 열어주는 환대의 의식이었던 것이다.


공문의 의미를 느낀 것도 잠시, 행정 절차가 끝나자 이번엔 현장의 부담감이 밀려왔다. 스님을 모시고 가는 길에 실수라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웠다. 하지만 순례 당일 무사히 전등사를 출발했고 버스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내 모든 긴장은 눈 녹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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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종무원분들은 멀리서 온 우리를 가족처럼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고, 스님들도 직접 나오셔서 합장으로 인사를 건네주셨다. 건봉사에서는 귀한 부처님의 진신 치아사리 친견(단순한 구경을 넘어선, 예의와 존경이 담긴 불교 단어) 을 특별히 도와주셨고, 화암사에서는 전등사와 인연이 깊으신 정휴 스님께서 우리 순례단을 위해 직접 법문을 해주셨다. 주차도 사찰에 가깝게 해줄 수 있게 도와주셨고 따듯한 공양(식사)도 제공해주셨다. 딱딱한 팩스 용지 속에 담겨 있던 "편의를 봐달라"는 문구가, 현장에서는 "정성을 다한 환대"로 피어나고 있었다.


절에서의 행정은, 숫자와 팩트 너머에 ‘사람’과 ‘마음’이 있었다. 나는 팩스기 앞에서 느꼈던 그 따뜻한 온기가 무엇인지, 도반들을 향한 사찰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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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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