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무설전 오른쪽 벽면에는
검은색 만년위패가 반듯하게 모셔져 있다.
사실 그 공간은 내게는 성스러운 자리보다는
일거리로만 느껴지는 곳이었다.
매달 지장재일이 끝나면 새 위패들이 들어왔고
나는 사다리를 타고 위태롭게 올라가 위패를 모셔야 했다.
때로는 교체 요청이나 문의가 들어와
일을 하다 말고 무설전에 다녀오기도 했다.
위험하고 번거로웠기에
내게 그곳은 그저 ‘내가 처리해야 할 소임’의 현장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설전에서 행사가 끝난 후 종무실장님과 함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러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실장님은 위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나는 죽으면 아이들한테 여기에 두라고 할 거야.”
“진짜요? 왜요?”
종무실장님은 자신이 떠난 후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선산에 자기 무덤을 남기면
찾기도 힘들고 관리하기도 버거우니까라고 덧붙이셨다.
“전등사처럼 알려진 절이면,
산소 가야지… 하는 무거운 마음보다
‘절도 보고, 관광도 하고’
그냥 들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그 말씀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다.
나는 죽은 뒤 화장은 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다음은 어디서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지?’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로 남고 싶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죽음이 아직 멀게 느껴져서 그럴까?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 뒤에 남겨질 사람들을
얼마나 배려하고 떠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문제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전등사에서 처음으로 추석을 맞이했다.
절에서는 만년 위패를 모신 가족들을 비롯한 신도들을 위한
‘합동 차례’가 열렸다.
나는 행사를 준비하면서
이 의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처음 보게 되었다.
재를 지내는 날, 많은 사람들이 무설전에 찾아왔지만
그들의 손에는 무거운 제수용품이 없었다.
상차림 걱정 없이, 그저 가벼운 몸으로 오면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제사상에 절을 하고
부모님의 위패를 말없이 바라보다가 떠나갔다.
음식장만할 걱정 없이,
뒷정리 부담 없이,
오롯이 고인에 대한 기억에만 집중하는 차례였다.
그제야 종무실장님이 왜 이곳을 택하려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처음에는 그 간결함이 남겨진 자녀들의 편의를 위한 이기심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다시 보니,
그것은 자식에게 짐을 지우지 않으려는 더 깊고 거대한 사랑이었다.
이게 어쩌면, 우리 세대가 새롭게 그려야 할 죽음의 풍경이 아닐까.
이제 나도 나의 마지막 자리와,
언젠가 보내드려야 할 분들에 대해 다시금 그려보게 된다.
부담이 아닌, 따뜻한 그리움으로 남을 수 있는 자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