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봄날 오후, 교무 소임을 맡고 계신 남룡스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링크 하나 보낼 테니, 시간 날 때 해봐요.”
그건 PAI 성격유형검사 설문지였다.
스님이 나를 유심히 지켜보고 계셨다는 건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일 잘하던 사람이 갑자기 절에 들어와 종무소에서 일하겠다며 나타났으니,
궁금함도, 염려도 있었을 것이다.
‘올 것이 왔구나…’
이제 본격적인 분석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직감했다.
링크를 열고, 천천히 설문을 마쳤다.
며칠 뒤, 차실에서 스님과 마주 앉았다.
스님은 내가 응답한 결과지를 펼치며 조심스럽게 말씀을 꺼내셨다.
“봉석씨는 이상이 높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만큼, 마음이 자주 지칠 거예요.”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어릴 적부터 내 안엔 늘 높은 이상이 있었지만,
현실은 그 이상과 늘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항상 조급했고, 때로는 답답했다.
결과지를 보며 스님은 나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그 말들은 단순한 진단이 아니었다.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내 마음의 구조를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 후 몇 달이 흘러,
전등사에서 열리는 불교기초학당을 수강하게 되었다.
남룡스님은 그 강의의 교무 스님으로, 직접 강단에 서셨다.
그날의 주제는 ‘자아와 초자아, 그리고 무의식’.
스님은 프로이트의 개념들을 인용하며,
심리학의 언어로 불교 교리를 풀어내셨다.
“우리는 어떤 자아를 다스려야 할까요?”
“초자아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그 질문들은 수강생들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처음 듣는 방식의 신선한 해석에 몰입 되었다.
불교라는 오래된 가르침이
현대 심리학이라는 도구를 만나
이토록 섬세하고도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
그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새로운 통로처럼 느껴졌다.
남룡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누구보다 부지런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려는 그 모습은
단지 ‘말씀을 잘 전하려는’ 수준이 아니었다.
스님은 수행자로서, 시대의 언어를 익히고 계셨다.
생각해보면 이런 스님들을 꽤 많이 만났다.
어떤 스님은 싱잉볼 전문가 과정을 이수해,
명상 시간에 신도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또 어떤 스님은 출가 전 심리상담사였던 경험을 살려
신도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신다.
그건 결코 ‘능력 과시’가 아니다.
그 재능들은 어쩌면 수행의 도구이며,
지금 시대에 맞는 전법의 수단이다.
더 많은 이들에게,
더 정확하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한 그분들만의 노력이다.
나는 그런 스님들을 생각하며
이렇게 조용히,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려 애쓰는 분들을
조금 더 많은 이들이 알게 된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그분들의 마음이
그 마음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조용히 이어질 수 있도록
내가 다리가 되고 싶어졌다.
그게,
이 번생의 사명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