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빠져나간 오후 5시쯤,
조용했던 전등사에선 공이 바닥에 ‘퉁퉁’ 튕기는 소리가 들린다.
절에서 어디 불경(?)하게 공을 가지고 놀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바로 절의 주인인 스님들께서 족구 연습을 하시는 소리다.
며칠 뒤 열릴 족구 시합을 위한 준비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전등사와 이웃한 온수리 성공회 성당의 신부님들.
두 종교인들이 한데 모여 매년 족구 한 판을 벌이는 전통은
그 자체로도 따뜻한 교류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경기라기보다는, 함께 땀 흘리며 웃는 평화의 시간이다.
사실 강화도는 ‘전통’과 ‘불교’의 이미지가 강한 곳이다.
고려 때부터 이어져온 전등사, 강화유수부와 고인돌 유적지 등
수많은 역사문화 자산이 남아 있다.
지명에서도 불교적 색채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불은면(佛恩面)’은 ‘부처님의 은혜’라는 뜻을 담고 있고,
‘길상’, ‘청련’처럼 불교 용어에서 유래된 명칭들도 여럿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 불교의 숨결이 깃든 땅이지만,
놀랍게도 전등사 주변에는 성당과 교회도 많다.
특히 한옥으로 지어진 온수리 성당은 이국적이면서도 익숙한 풍경을 선사한다.
이는 지리적 특성 덕분일지도 모른다.
강화도는 해상 관문 역할을 해온 지역으로,
서구 문물이 비교적 빠르게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도에서 성당이 퍼지게 된 데엔 한 가지 일화도 전해진다.
온수리에서 99칸 대저택을 소유한 대가집이 있었는데,
그 집안 아들이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신부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집안은 놀라고 당황했고, 결국 아들은 쫓겨나 성당으로 가게 되었다.
그 뒤로 그 집에서 일하던 노비들과 하인들이
신부님이 된 도련님을 만나러 성당에 드나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온수리에서 성당 문화가 자연스럽게 확산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든 아니든,
강화도의 땅 위에 절과 성당이 나란히 존재하는 풍경은
이곳이 오래전부터 다양한 신앙을 품어온 공간임을 보여준다.
종교가 다르면 서로 멀리할 것 같지만,
이곳에서는 스님들과 신부님들이 족구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향해 웃는다.
경쟁보다는 교류로, 경계보다는 관계로.
그들은 각자의 믿음을 지키면서도
함께 살아가는 길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고 있었다.
이 따뜻한 교류가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랬다.
서로의 차이를 넘어서,
함께 웃을 수 있는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