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 울력 공지가 내려왔다.
정규 출근 시간보다 한 시간 이른 시각, 모든 직원이 전등사 매실밭에 모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절 안에 살고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출퇴근하는 직원들은 새벽같이 집을 나서야 했다.
절에는 ‘울력’이라는 문화가 있다.
구름 운(雲)에 힘 력(力), 다 같이 힘을 모은다는 뜻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일의 크기와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한다.
직책도 업무도 무관하게 그냥 함께하는 것이다.
공동체 생활의 규범이자 수행의 방편으로 알려진 울력은,
수행적으로는 분명 좋은 문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업무’와 ‘조직 관리’라는 관점으로 분별하게 된다.
“이 많은 인원이 꼭 이 일에 다 필요할까?”
“정규 업무는 언제 하지?”
나도 안다.
이건 아주 전형적인 ‘세속인의 마인드’라는 걸.
우리는 효율과 생산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방송인 타일러는 “지금은 생산성이 종교인 시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절은 그 가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다.
여기에는 상상 이상의 비효율이 있다.
결재는 여전히 도장을 찍는다.
전자결재는 없다.
공문은 팩스로 보내고, 장부는 손으로 쓴다.
은행 업무도 인터넷이 아니라, 직접 은행을 방문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비효율 속엔 낭만이 있었다.
결재 도장을 받으러 오신 스님과 눈이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게 되고,
은행 창구에선 나를 기억해주는 직원이 생겼다.
서류를 찾으러 가며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들이,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비효율 속에는 ‘사람’이 있었다.
효율성과 속도가 전통을 밀어내는 것은 당연한 흐름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말이다.
그래서 요즘 발생하는 사람들간의 문제가
효율과 속도가 낳은 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비효율들이야말로, 전통을 지탱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여전히 답답하긴 하다.
하지만 이 빠른 효율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걸 잊고 살아가는 것 같았다.
빨라질수록 조급해지고,
편리해질수록 마음은 더 병들어간다.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가고 싶어지는 이유도,
결국은 그런 비효율과 느림 속에서
비로소 ‘나’를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전등사의 이 느림은 그래서 불편했지만,
동시에 낯설게 반가운 시간이었다.
그건 효율에 밀려 사라지고 있는
‘사람의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울력이 끝나고 보살님들이 챙겨주신 수박을 먹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도… 여전히 효율적인 게 좋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