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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주연 Jul 21. 2021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2021년 7월 16일 편집자의 일기

금요일 자 문화면(영화 소개)을 담당하는 날은 꽤 고심하게 된다. 개봉을 앞둔 영화를 타 신문사에서도 비슷비슷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내 지면과 비교하게 된다. ‘출발 비디오 여행’의 모 진행자처럼 재미없어 보이는 영화도 극장에 가지 않고 못 배기게 만들기 위해서 평면의 신문 한 장은 제약이 많다. 그래서 다른 요일 문화면보다 더 고민하게 된다. 


오늘 문화면 톱기사는 ‘가슴 설레는 로맨스 영화 두 편을 소개합니다’ 정도의 주제로 작성됐다. 두 편의 영화 중에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가슴 설레는 로맨스 영화가 맞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필리아’는 그런 카테고리로 묶여 소개될 영화가 아닌 듯싶었다. 


오필리아 - 진은영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나는 그것을 배웠다 

해변으로 떠내려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 
어느 눈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텅 빈 강바닥을 서성이던 사람들이 
내게로 와서 먹을 것을 사간다 
유리와 밀을 절반씩 빻아 만든 빵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오필리아라는 비극 속 인물을, 나는 이 문장과 함께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시를 배울 때 이 문장은 어떤 거대한 질문이었다. 이십 대 초반을 살아가던 나를 사람들은 늘 ‘청춘’이라 불렀지만 정작 나는 그 시절 속을 살아가면서 그 단어, ‘청춘’을 한 번도 내 것으로 소유하지 못했다. 홀로그램처럼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잡히지 않는 것, 그 막연한 시절에 혼자 중얼거렸던 질문. 사랑이 가지고 있다는 ‘익사의 기억’은 무엇일까. 나는 내 청춘을 이 질문으로 기억한다. 


[사랑, 희극과 비극 그 어딘가] 


처음 뽑은 제목에서 데스킹을 거쳐 지금의 제목 [사랑… 희극인가 비극인가]이 됐다. 제목으로선 수정된 제목이 좀 더 좋을 수 있겠지만 ‘익사의 기억’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처음 제목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희·비극, 딱 하나의 극단으로 설명할 수 없으니까. 


오랜만에 스무 살 적 품고 살았던 그 질문을 곱씹어봤다. 이제 모든 사랑이 지니고 있다는 ‘익사의 기억’이 무엇인지 스무 살 적보단 조금 더 알게 됐을까. 한 손에 꽃을 움켜쥐고 물 위에 뜬 오필리아처럼, ‘흰 종이배처럼 붉은 물 위를 흘러가며’ 그것을 알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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