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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본이 Oct 26. 2024

예술인 창작지원금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 프롤로그 12


여기 브런치에 글을 쓰고 계신 작가님들은

스스로 자신의 직업이 '작가'라고 소개를 할 수 있나요?

연극을 한 지 7년 차가 되었는데 여전히 나의 직업을 소개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한없이 작아지고 창피해진다.

그래서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려서 두리뭉실하게 '연극하고 있어요.'라고 말을 하면 꼭 돌아오는 말이 있다.


"우와 멋있어요. 그럼, 배우예요?"


처음에는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거 같은데, 연기에 재능이 있지도 그렇다고 깡이 있지도 않았다.

그래서 연극이 좋다는 이유로 이것저것 내가 불려 갈 수 있는 공연이면 어떤 역할이든 다 갔다.

덕분에 나는 이도 저도 아닌 재미있는 연극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배우, 연출, 작가, 제작, 무대감독, 조연출, 무대크루, 영상, 음향, 조명 오퍼레이터 등등 아마 내가 까먹은 공연까지 해서 뭐 더 많은 역할을 경험해 봤던 거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왔으면서 열등감에 갇혀 내가걸어온 길을 비관적으로 표현하는 거 같아 나에게 또상처 주고있지만 그럼에도 내가 넘어서지 못한 산 중 하나다.


사실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극을 하면서 창작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치열했는지 물어보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 작아지는 것 같다.

대본을 100번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이 대사의 왜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찡찡거리며 요행을 바랐고, 항상 아침 시간은 아르바이트하면서 보냈기에 오후에 연습하러 가면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연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핑계로 개인 연습을 하지 않고 잠에 들었다.

연극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아르바이트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연습 시간보다 아르바이트하는 시간이 월등하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게 문득 느껴질 때면


"아르바이트가 본업이고 연극은 취미인가?" 하는 현타에 한없이 동굴을 파고 들어간다.


그럼에도 내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모든 행위는 연극을 하기 위함이라고 애써 '너는 잘하고 있어'라고 자기 위안을 삼았지만, 스스로에게 예술가 또는 연극인이라는 타이틀도 씌어주지도 못하고 생계는 아르바이트로 해결하고 있으니, 나의 직업을 소개해야 하는 순간이면 저기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그렇다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다 나는 분명 똑같이 연극을 선택할 것이고 후회는 없다.

정말 즐거웠고, 여전히 즐겁고, 앞으로도 지속해서 연극을 하기 위한 방법을 지금 찾고 있으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왜 갑자기 하냐?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가기 위해서 커피 자격증도 따고, 경력도 쌓아보고, 언어 공부를 하기 위한 어학연수 등록도 끝내고 남은 준비는 딱 하나 '돈'이었다.

몇 년을 열심히 일했지만 필리핀 어학연수 비용을 내고 나서는 통장잔고가 바닥이라 최대한 일을 많이 해서 돈을 모아야 했는데 최저임금 노동자로서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돈을 모은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연극을 하면 돈을 못 모은다고 워킹 홀리데이를 준비하는 해에는 연극 작업도 마다했다.

똥개가 똥을 끊는 노력까지 기울이며 돈을 모으겠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콩쥐팥쥐에 구멍 난 장독대처럼 돈이 나도 모르는 새 줄줄 새어나갔다. (물론 다 내가 어딘가에 쓴 돈은 맞다)


그때 나에게 단비처럼 내려와 준 '예술인 창작지원금'


연극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를 고정적으로 해서 고용보험이 나간 탓에 한 번도 예술인 창작지원금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고용보험 때문에 창작지원금 선정에서 탈락했을 때 한 달 내 소득은 53만 원이었다…. ㅎ)

그리고 한 번은 예술인 활동 증명을 반려당한 적도 있다.

내가 예술 활동을 갱신해야 할 때 오퍼, 무대 크루를 훨씬 많이 해서 자료 미비로 반려당했었다.

현장에서는 오퍼랑 무대 크루 없으면 공연이 안 돌아간다고 공연에서 정말 소중한 역할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예술인 활동 증명 시스템에서 나는 창작진이 아닌 대체가능 인력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구구절절 한이 참 많았던 예술인 창작지원금을 워킹 홀리데이를 가기 전에 습관처럼 신청했고 버릇처럼 당연히 기대가 없었는데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연극 클럽 GWEN을 하면서 쓴 돈을 많이 메꿀 수 있었고, 조급한 내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준 돈이었다.


그리고 정말 웃기는데 내가 조금은 예술가로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그저 중위소득 120퍼센트를 넘지 않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2년에 한 번 주는 불로소득 한 번으로 스스로가 조금은 예술가 된 거 같다고 생각하는 내가 참 철없어서 보이지만 그래도 매번 돈과 시간을 쏟아부었던 연극이 나에게 결정적인 순간 돈을 준 경험이었다!


그리고 저 예술인 창작지원금 받았다고 곧바로 공연하러 갔다ㅋㅋㅋ

암암 연극하라고 준 돈인데 연극할 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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