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대신 유연함
40대가 넘어가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그래 그럴 수 있지..'
'아.. 나랑 많이 다르네.. 오케이!! 거기까지..'
자칫 체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누구보다 예민하고 생각이 많고 걱정을 사서 하는 성향이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체념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말이라고.
살아가면서 우리를 화나게 하고 힘들게 하는 여러 가지 들이 있다.
사회의 부조리함과 구조적 문제부터 과자를 먹고 껍질은 아무 데나 놔두는 아이들의 습관까지 말이다.
내 기준으로 돌아가는 내 세상 안에서는 타인은 그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불편한 존재가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어떨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탄식과 안타까움 말고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면
내가 바라보는 타인과 세상에 대한 시선이 바뀌면서 결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타인을 이해하는 척 비판의 소지를 남겨두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아.. 저 사람은 나랑 다르구나'를
인정하고 나면 자연스레 내가 넘어가지 않아도 되는 선을 긋고 그 기준에 맞춰 행동할 수 있게 된다.
굳이 화낼 필요 없다는 것.
병원에서 간호사로 지내오던 시간 동안 여러 관계들이 있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와 생각하는 결이 맞지 않아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행동과 말의 기준, 가치관이 다르다는 건 함께 일을 해 나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곤욕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내 기준과 잣대를 들이밀며 판단하고 맞춰주길 바라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대방의 기준에서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간호사로 살았던 그 시간을
지나오고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건 그것 하나다.
사고의 유연함을 잘 알고 있다는 것.
나이가 들어가며 체력적인 에너지와 유연함은
자연스레 예전만 못하고 사라지게 된다.
빠져나간 체력과 에너지는
이제 정신적 '성숙함'과 '유연함'으로 탈바꿈되어 채워져야 한다.
체력적 한계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사고의 유연함으로 얻어지는 지혜로움뿐이다.
나의 노력과 시간은 나를 위해서 혹은 내 가족을 위해서 쓰여야 하기에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바라보는 시각만 바뀌어도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 수 있는데 말이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내가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타인의 생각과 가치관으로 나를 흔들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의 노력이 더 빛이 날 수 있는 것들에
선택과 집중을 하며 나를 더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졌다.
양손 가득하게 짐을 가득 들고서 무거워
제대로 걷지도 못하다가
손에서 놓아야 할 의미 없는 것들을
내려놓고 보니 비로소 꼭 필요한 것만
손에 쥔 채로 앞으로 걸어가며
가끔은 뛸 수 있는 여유도 생기게 되었다.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미련을 갖기보다
과감히 놓을 수 있을 때, 내가 갈 방향은
더 또렷하고 선명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