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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니 Aug 06. 2020

나의 이름은,



글의 서두를 친한 친구의 이야기로 시작해보려 한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내가 누구인가'를 늘 탐구해왔고 지금도 탐구해가고 있는 사람으로, 지인들 중 '자기 탐구 왕'상의 후보를 꼽자면 TOP 3안에 들 만한 인물이다. 지난해 북유럽 3주 여행의 마지막 날을 정리하기 위해 혼자 카페에 들어가 일기장을 뒤적이던 중 친구에게 메시지가 왔다. 시차를 계산해 보니 한국은 새벽쯤 되었다.

"보니, 아이언맨 3 봤어?"


갑자기 아이언맨? 평소 히어로물을 스스로 챙겨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아이언맨 3은 물론 전편들도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와서 여운이 남은 건가 했는데 그녀의 화두는 예상외의 주제로 던져졌다.


"음... 아이언맨 3가 무슨 내용이냐면, 아이언맨이 슈트를 입잖아. 슈트의 힘으로 싸우다가 2편에서 한 번 된통 트라우마가 생긴 적이 있었어. 싸우다가 아이언맨 슈트가 벗겨져서 급 나약해졌었거든. 그래서 3편에서 슈트를 엄청 많이 만들고 계속 입고 계속 업그레이드해. 그러다 슈트가 고장이 나서 한동안 사용을 못하게 되자 아이언맨이 계속 불안함을 느끼는데 우연히 며칠 동안 같이 있던 꼬맹이가 이렇게 얘기해.

[본인이 정비공이라면서 그럼 뭐든지 지금 그냥 만들지 그래요?]

그때 아이언맨이 깨달아. 슈트가 있어야 아이언맨인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슈트를 만든 아이언맨 자체라는 거를."


이야기를 다 들을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그녀가 갑자기 아이언맨 얘기를 꺼낸 의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친구가 뒤따라 말을 이어갔다.

"그런 내용이 좀 담겨있는 건데, 나는 너의 '기획자'라는 단어가 떠올랐거든. 회사에서 만드는 프로젝트만이 아닌 본인의 일상에서도 너는 기획을 하잖아. 그 행사들이 너를 만드는 게 아니라 네가 그 행사들을 만들었다는 게 누가 봐도 보이는! 회사에 있든 나와 있든 무에서 유를 기획하는, 그냥 어디서든 기획자. 누가 봐도."




나는 스스로를 정의해줄 수 있는 단어들을 언제나 찾아오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내 이름은 전 학년에 한 두 명은 꼭 있을 만큼 흔한 것이었고 그 탓인지 남들 다 가진 별명도 딱히 없었다. 어릴 때부터 별명이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더랬다. 지금 생각해보니 평범했던 성격 탓이 컸겠지만 그땐 이름 탓이라도 하고 싶었나 보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대학생이 되던 해 나는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별명을 만들게 되는 게 그게 그래 봤자 '보니'였다.


'통통한 여자아이'라는 뜻을 가진 '보니'는 내 본명만큼이나 평범한 닉네임이었지만 이름이 아닌 다른 '명사'로 나를 지칭해주는 순간들이 늘어갈 때마다 묘한 기쁨을 느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나를 '보니'라고 부르기 때문에 익숙해졌지만 그때는 내가 이름이 아닌 다른 단어로 정의된다는 사실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혼자 조용히 즐거워하곤 했다. 음,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긴 하지만 귀여운 기억이다.



이름뿐 아니라 직업도 나를 나타내 줄 수 있는 것으로 갖기를 원했다. 대학교 1학년을 막 마친 그 당시에도 하고 싶은 것들만 잔뜩 많아서 정작 먹고살기 위해 어떤 일을 선택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던 시절이었다. 그저 어느 회사에 소속된 일원으로 사회인으로서의 나를 정의하고 살고 싶지 않았다. (이것 역시도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의 일만 하고 살 줄 알았던 나의 갇혀있던 생각이긴 하지만.) 그러다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수입이 괜찮다는 행사 운영요원일을 하게 되었고 외국 한 번 나가보지 못했던 내가 외국인들 사이에 뒤얽혀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워낙 포커페이스가 잘되는 덕분에 노련해 보였는지, 아니면 발버둥 치는 모습이 꽤 적극적으로 보였는지 기획사에서 발탁(?)이 되어 참가자들의 투어가 있던 경주까지 따라갔다. 그들을 위한 만찬을 준비하고 회의를 위한 자료를 만들고 부족하지만 뚝딱거리며 디자인한 것들에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걸 보고 매 순간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정말, 정말 그냥 신기하고 즐거웠다.

행사의 마지막 날 모든 참가자들이 모여서 마무리를 축하하며 박수를 쳐주고 퇴장하는 문 입구에 서 있는, 그저 운영요원 중의 한 명일뿐이었던 나에게 명함과 선물을 안겨 주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손위에 수북하게 쌓인 그들의 명함을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들여다보니 히죽 웃음이 났는데 너무 감성적이었던 탓인지 눈물도 조금 났다. 그리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해하는 자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기획자가 되었다.

  

 

일을 시작하고 꽤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여행에서,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방향성을 어쩌면 조금 잃었던 것 같은 그 시기에 떠난 여행에서 친구의 그 한마디는 나를 조금 울렸다. 내가 아이언맨이라는 이야기도 아니었는데 스스로 걸어온 인생이란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면서. '그래! 난 행사를 만들기 위해 기획자가 된 게 아니라 내가 기획자이기 때문에 이런 행사들이 만들어지는 거야!'라고 꽤 오래 위로를 했다. 그리고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내가 처음 '보니'라는 이름을 찾아내어 나를 다른 무언가로 정의하려고 애썼던 그 순간으로 돌아갔다. '보니'라는 이름에 나를 맞추며 살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가 '보니'라는 이름에도 다 담을 수 없는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그녀가 툭 하고 던져준 한마디는 새벽에 문득 떠오른 고민 중에 튀어나온 슈트의 나사 같은 것이었겠지만 그 당시 나를 가장 튼튼히 감싸주었던 슈트가 되었다. 그녀의 말은 여행에서도,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에도 오랫동안 나의 중심을 붙들어주었다.


친구에게 이 글을 빌어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 그리고 그 자체가 아이언맨인 로다주에게도.

물론, 아직 아이언맨 3은 보지 못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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