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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 Oct 31. 2020

일상의 수업

난민/유대인/이민자 여성들과 함께 

2015년 어느날의 기록


유럽에서 유일하게 난민 전면수용을 선언한 나라 독일. 때문에 하루에 8천명의 난민들이 몰려들고 있다.  말이 수천명이지...생각해보자. 그 많은 사람들이 당장 기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고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돈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선 직업이 필요하고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 난민자격심사를 위한 인력만해도 늘어나는 난민 숫자에 비례해서 증원시켜야 하는 것이다.  물론 메르켈은 지금 독일이 난민수용을 거부한다면 다음 세대에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했다.  인류애를 떠나서라도 이것은 멀리 보는 혜안이지만, 이 명분을 따라가기 위한 현장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현장에서는 우왕좌왕하는 것 같고 시민들이 모두 한 마음 한 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하루가 멀다하고 난민이 밀집한 곳에서 난민들간의 집단 싸움이 일어난다. 

대책없이 난민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한계를 둬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극단주의자 무슬림을 잘 가려서 받아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아무튼지간에 국가정책을 설정하는 것과 이를 현장에서 온전히 실현하는 것 간에는 온도차가 큰 것이다. 

이런 사실은 독일어학교 교실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나 또한 독일인과 결혼한 이민자 여성에게 제공되는 사회통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를 지원받으며 수업을 듣고 있다. 우리 교실 18명 정원 중에 6명이 시리아 난민이고.  청년들, 네 아이의 엄마, 노부부이자 교사, 엔지니어, NGO출신. 모두 좋은 사람들같다. 하나같이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매사에 긍정적이다. 이집트, 코소보, 알제리, 우크라이나, 이탈리아, 시리아 부부, 프랑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한국, 인도, 러시아, 시리아, 시리아, 터키, 시리아, 이탈리아, 일본. 앉은 순서대로 국적을 나열해봤다. 

이집트 아쉬라프. 전처가 독일인이었기에 말은 엄청 잘 하는데 문법이 약한 무슬림 아저씨. 모임에서 말이 젤 많은 분. 영어도 독어도 암튼 엄청 말이 많다. 

코소보 부림. 울 반 뿐만이 아니라 학교 매력녀들과는 다 말을 트는, 저음이 묵직한 전형적 바람둥이형 아저씨. 딸뻘 되는 러시아 아가씨와도 뭔가 친근한 분위기. 딸과 둘이 산다...

알제리 카디쟈. 프랑스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와서인지 불어에 능통하고 아랍어와 영어 능통에 글씨가 인쇄활자 수준인 흑발의 물리학 박사과정.  그 나라도 윗사람이나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있고 사회적 규율이 엄격하다고 한다. 공부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순수한 성격인 듯, 집을 못찾고 고생하는 일본인 이탈리아인 급우들에게 자기와 남친의 집을 제공. 베를린 온지 1년 반 됐다는데 와서 얼마 안되어 탱고 모임에서 만났다는 피앙세는 25세 연상의 교수. 으음...

우크라이나 타냐. 그 나라에서 큰 제약회사에서 60명 조직을 이끌던 리더.  말도 잘 하고 의견도 세고. 은근히 강하고 단호한 말투여서 러시아 영화 보는 듯한 느낌도. 아침에 학교올때 보면 늘 전화기를 끼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며 온다. 바쁜 신여성.

그밖에도 너무나 다양한 국적과 배경의 사람들이 독어를 배운다는 이유로 한 자리에 모였다. 주제에 따라 천차만별의 세계관이 펼쳐지는 이 독어 수업에 어찌 흥미를 느끼지 않을수가 있을까?!!!




2016 3월 옆지기 부모님과 난민 주제로 


어르신들과 대화는 늘 배우는 게 있지. 로보트가 대체하는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고.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게임하는 분들 중에 40마리 소를 돌보는 로보트를 둔 분이 있다고. 로보트가 어디까지 인간의 일을 대체하게 될까. 일이 더 많아지면서 사람들 더 고용하기도 하더라는 아버님 말씀도 일리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독일연방정부가 각 도시로 난민들을 배치하면서, 농경지역 연로한 주민들 집에 난민 젊은이들을 함께 살게 하는 정책을 실험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옆지기 부모님들은 대체로 긍정적이시다.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회에서 일평생 살아오신 분들로서, 집권당인 메르켈의 기독교민주당 정책을 지지하는 것. 동네에 온 난민들도 다 착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다만, 혼자 사는 남자들 난민에 대해서는 좀 우려하시는 듯.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시지만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본인의 생각을 강하게 말씀하시기도 

한다. 다들 마음이 열려있는 좋은 분들인 듯. 포근하다. 올 때마다 환대를 경험한다. 

내가 받으면 이렇게 좋은데 남들에게도 환대해야겠지...




2019년 2월 유대인 학교 독어수업에서 

    

오늘은 이상하게 처음과 끝이 다 연결된 듯 한 하루.

아침에 안희정 3년 6개월 유죄 미투 선고 소식을 듣고 미투 멤버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었는데, 저녁엔 미투 

운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일본군성폭력 고발자이자 여성평화인권운동가 고 김복동 할머니의 추모식이...


독어 수업시간에 홀로코스트 주제로 엄청 무거운 대화를 하던 중에(아버지가 아우슈비츠에 잡혀갔던 기억을 가진 유대인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더), 독일의 사죄하는 자세와 일본 정부의 그것을 비교하면서 전쟁 성노예로 

고통받았던 분들이 돌아가시고 이제 23명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2020년 2월 애정하는 VHS 생활 독어반 급우들과


어디엘 가건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살면서 좀 안심이 되는 일이다. 

이민자라는 정체성 때문인지 국적 인종 불문하고 유독 빨리 많이 친해진 독어반 사람들. 

한국 방문했다가 돌아와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을 위해 며칠전부터 할 얘기 생각하고, 오늘 아침엔 일찍 일어나 내가(!) 밥을 다 하고, 아끼고 아끼려 다짐한 그 귀한 김가루를 뭍혀 미니 Reisbälle (주먹밥)까지 만들었는데...

폴란드 친구 아그네시카가 너무나 맛나다고 칭찬을 하는 바람에 이번엔 두 배로 넉넉하게 준비했는데...

아침부터 땔룽 거려야 할 와쯔앱 방이 조용해서 이상타 했더니 이번 주 휴강.ㅜㅜ

담주는 내내 일을 해야 해서 천상 그 담주에나 보자고 썼더니 다들 샤데~라고...ㅎㅎㅎ

갑자기 비어버린 오전 3시간은 오롯이 먼지 쌓인 독어 교재를 여는 데 써보겠드아~~~


이란, 일본, 칠레, 폴란드, 이탈리아, 파키스탄, 러시아, 호주, 스페인, 멕시코, 시리아, 루마니아 그리고 코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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