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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한 Jun 25. 2024

결국 보스호라스 03


종로 3가에 내려 종묘를 지나치고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오후에 가까워지니 해는 더 뜨거워지고 검은 옷을 입은 나는 땀이 났다. 아뜰리에가 있는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키오스크로 주문했다. 직원을 향해 말했다.


"샷 하나만 넣어주세요."


타인과의 첫 대화였다.


직원은 "네"라고 대답해 주었고 내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직원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게 신기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싶었고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구나 싶었다. 평소라면 그저 무표정으로 멍한 눈으로 아무것도 보지 않을 내가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커피를 손에 들고 책방에 도착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열기가 느껴졌다.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고 커튼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충전이 끝난 조명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손을 씻고 나와 앉았다. 유튜브로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 음악을 켜고 어제 읽다만 책을 펼쳤다.


고개를 숙여 커피를 빨대로 쭉쭉 빨아먹으며 책을 읽었다. '제철에는 제철 소설. 여름, 콜라!' 표지에 반해서 소설이라고 해서 책에 대해 묻지도 않고 내용을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않고 샀던 책이었다.


책방에 손님은 오지 않고 페이지는 한 장 한 장 넘어갔다. 조용한 책방 안으로 오토바이 소음과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어왔다.


"손님이 오면 좋을 텐데."


혼잣말을 하며 책을 덮었다. '남호의 여름 이전보다 시원해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한이와 함께 하는 나의 여름은 어떨까' 그런 생각도 하면서.


손님이 없는 책방에서는 생각이 넘쳐흐른다. 우울은 잠시 저편으로 밀어내고는 생각에 잠겼다.


- 좋아.


한이에게서 답장이 왔다. 나는 절로 지어지는 미소에 덩달아 기분까지 좋아졌다. 한이는 어느새 우울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나의 우울을 점차 지워내고 있었다.


한이와 나는 첫 만남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연희 친구면 나랑도 친구잖아"


한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 웃음이 좋아서 선뜻 번호를 건네주었던 것도 같다. 그날 이후 한이와 나는 사소한 메시지를 주고받다 자기 전에는 전화 통화를 하고는 했다. 그러다 서로의 시간을 내어 우리가 처음 만났던 카페에서 만났다.


나는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지 기다리는 쪽이 되고 싶었다. 앉아 있는 내게 다가와 한이는 인사를 건넸다.


"안녕?"

"응. 안녕!"


자리에 앉는 한이에게 먼저 음료를 시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한이는 웃었다.


"뭐가 미안해. 먼저 시켜줘서 내가 고맙지"


그렇게 말하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사실 는 한이의 음료 취향 따위는 몰랐다. 그저 날이 더우니 달지 않은 시원한 음료가 좋을 것 같았다.


"어떤 음료 좋아해?"

"나는 다. 가리는 거 없어. 너는?"

"나도. 너무 쓰거나 달지만 않다면 다 좋아."


내 말에 한이는 또 웃었다. 다 좋다면서 조건을 붙이는 게 귀엽다고 했던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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