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투
2023년과 2024년 되는 것의 차이가 내게는 숫자 하나 바뀌는 것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정말 몇 년 만에 송구영신 예배도 드렸다. 2023년 마지막 날 밤에 가서 2024년 첫날 이른 새벽에 들어와 늦게까지 자고 일어나 떡국을 해 먹었다.
나이가 들면서 새해가 되는 건 아쉬울 것도 희망차지도 않은 그저 덤덤한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느낌이다. 그래도 뭔가 이 세계에 들어가 리셋된 느낌이니까 새로운 뭔가를 하느라 다들 운동을 시작하고, 새해 계획을 짜겠지.
나도 그러려고 했지. 새로운 기분을 느끼고 새롭게 시작하려고 일본 소도시 여행을 계획했었다. 당장 다음 주에 떠나는 일정이었는데 1월 1일 되자마자 터진 일본 지진 소식에 멘붕 됐다. 일본 대도시에는 몇 번이나 다녀와서 처음으로 이름도 생소한 소도시를 여행해야겠다고 예약해 둔 것인데 하필이면 진원지와 가까운 편이라 고민하다가 수수료 내고 취소했다.
여행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우선순위가 보인다. 어떤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선 꽤 유연하고 담담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어나지 않은 일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고 안전을 가장 먼저 생각하기도 한다. 나 같은 불안도가 높은 사람한테는 지진이 이미 일어난 곳에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여행을 가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떠나는 사람들 보면서 갈걸 그랬나 싶기도 한데 어쩌겠나 이게 나 인걸. 태풍 왔을 때 해운대 앞 호텔에서 자다가 바람 소리에 경기 일으켜서 바로 나와서 부산역에 택시 타고 갔었다. (사실 그게 더 위험한 일이란 걸 그때는 몰랐다. 태풍에도 쌩쌩 달리는 부산 택시라니...) 북해도 여행 때 눈 때문에 비행기 지연되고, 열차 탈선 되었을 때도 얼마나 멘붕이었는지 모른다. 경험을 하게 되면 태연해지는 게 아니라 어째 더 몸을 사리게 된다.
그래서 일본에 또 갈 거냐고? 몰라. 우선 새해니까 떡국을 먹자.
재료 : 떡국 떡, 소고기 양지, 파, 계란, 후추, 소금, 국간장
떡을 불린다. 그리 오래 안 불려도 된다. 떡국 해봤냐고? 음... 해봤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1~2인분 떡국은 엄마 옆에서 한 적은 있는데 예전에 교회에서 단체용 떡국 했다가 드럼통 다 태워 먹어서 다 버린 적도 있다.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왜 갑자기 떡국을 하겠다고 나선 것인지...
냉동실에서 소고기 양지 꺼내서 해동시킨다. 그냥 전자레인지 살짝 돌렸다.
난 핏물 그런 거 안 빼... 칼로 대충 먹기 좋게 썰어 준다.
이다음부터 사진이 없어. 사진 찍으면서 혼자 요리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귀찮은 일인지 모른다.
요리 유튜버들은 다들 어떻게 하는 거지? 암튼 냄비에 물 받아서 썰어 둔 소고기 넣고 푹 끓여준다. 중간중간에 고기 익으면서 거품 찌꺼기 같은 게 막 올라오는 데 그거 건져준다.
10분 가까이 더 끓여주다가 간은 소금과 국간장으로 맞춰준다. 내가 간 맞추는 걸 잘 못해서 이때는 엄마찬스. 내가 하면 엄청 짜게 해 버려서 어쩔 수 없다.
떡이랑 파 썰어 넣고 후추도 뿌려준다. 나는 그냥 한꺼번에 다 넣어버린다. 대략 떡이 익었다 싶으면 계란도 풀어 넣는다. 이때도 후추 또 뿌려준다. 후추를 좋아하는 편. 나는 고명으로 얹어 먹는 것보다 계란 풀어서 먹는 게 훨씬 좋다.
엄마랑 한 그릇씩 뚝딱 먹었다.
떡을 500g인가 했던 것 같은데 배 터져서 죽을 뻔했다. 새해 다짐이나 계획 같은 건 하나도 없는데 작년 말에 건강검진 때 만성위염으로 조직검사도 했던 터라, 하나 정도 다짐한 게 '과식하지 말자'였는데 이미 해버렸다. 과식 안 하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엄마는 엄마 방에서 TV 보면서 먹고, 나는 나대로 내 방에서 유튜브 보면서 먹었다. 요즘 내 방에서 내 할 일 하면서 책상에서 먹을 때가 많다. 이렇게 습관이 되면 안 좋을 것 같은데 나는 거실 TV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이게 훨씬 편하다.
이렇게 해서 한 살 더 먹는구나. 나이 세는 법도 바뀌어서 솔직히 내 나이가 몇 살인지도 잘 모르겠다. 진짜로 나이 물어보면 몇 살인지 한참 생각하게 된다.
새해에는 더 건강해지고
덜 불행해지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