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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Feb 02. 2024

바질로 할 수 있는 것들(feat. 화이트 와인)

일곱 번째 사투

연초에 친구와 일본 소도시에 가려던 계획은 갑작스러운 7.0도의 지진으로 무산됐다. 취소 수수료가 있었지만 쫄보인 나로선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어 갈 순 없었다. 일본에 몇 번을 갔어도 지진을 겪은 적 없는데 하필 여행지가 진원지에서 꽤 가까운 곳이라 접었다. 


못내 아쉬워하는 친구를 위해 제주 여행을 즉흥적으로 갔었다. 여행 가서 와인은 꼭 마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여행 가서 맥주 캔을 자기 전에 홀짝 거린 적은 있지만 어쩐지 와인은 혼자 마시기 부담스럽다. 마침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와인 전문가가 평소 자주 보던 유튜버와의 콜라보로 와인 입문편을 해줬다. 여행 가기 전에 보고 가서 덕분에 와인 선택 및 와인 안주까지 일사천리로 마련할 수 있었다. 


고른 와인도 맛있었고 안주도 친구가 좋아해서 집에서 한 번 더 만들어 먹기로 했다. 


재료: 비스킷, 화이트와인, 크림치즈, 꿀, 바질

제주에선 이 과자가 없어서 아이비로 했는데 아이비도 맛있었다. 꼭 이 비싼 과자를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 유튜브 방송 때문에 이 과자가 인기가 많아져 배송이 지연된다는 문구도 있던데 나는 다른 곳에서 이틀 만에 받았다. 맛이 여러 가지인데 모를 땐 그냥 클래식을 고르는 편이다. 


비싼 과자라 패키지부터 곱구나. 안에 비닐 포장지로 두 개 들어 있다. 엄마는 날 것 그대로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했다. 평소 비스킷 잘 안 드시는 데 이 과자는 누룽지 같고(?) 맛있다고 하더라. 무가당 통밀 비스킷이라 건강한 맛, 그 자체다. 


하지만 난 이 과자를 그냥 먹으려고 산 게 아니다.


동네 마트에서 화이트 와인을 사 왔다. 화이트 와인은 고를 것도 없이 얘 밖에 없었다. 스파클링 와인을 살까 하다가 토스티 모스카토 블랙 에디션을 들고 왔다. 도수는 맥주 정도이고 코르크 마개로 되어 있는데 그냥 힘으로 뽕! 따면 된다. 힘이 없어서 한참 씨름하다가 땄다. 


상온에 있었다면 얼음에 칠링을 해서 마셔야 하지만 하루 전에 냉장 보관해서 그냥 땄다. 맛은 역시 화이트 와인이라 달달하고 맛있다. 근데 약간 뒤 끝맛이 쓰다고 해야 하나. 와인 잘 모르는데 비교대상이 있어서 제주에서 마셨던 화이트 와인이 훨씬 맛있었다.  

제주에서 마셨던 건 트러플헌터 레다 모스카토 다스티다. 단 맛이 중간 정도라 아주 달지 않고 쭉쭉 넘어가는 맛이었다.(이 와인은 추천!) 아쉽게도 우리 동네 작은 마트엔 이 와인이 없었다. 


안주는 바로 이 조합이다. 비스킷 위에 크림치즈와 바질을 얹고 꿀을 뿌려 와인과 함께 마시면 정말 맛있다. 집에 필라델피아 크림치즈가 낱개로 굴러다녀서 그걸로 했다. 꿀은 집에 있는 꿀이 설탕으로 굳어 있어서 잡화꿀을 일부러 샀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로 바질이다. 바질 그렇게 좋아하는 데 이렇게 먹으면 입안 가득 바질 향이 가득 차서 고소하고 맛과 어우러져 맛있다. 이거 먹고 화이트 와인 모금 마시면 과장해서 세상이 조금은 행복해진다. 


비스킷은 저런 고급 과자로 굳이 안 해도 되지만 바질은 꼭 필요하다. 바질 20g을 샀는데도 많이 남았다. 사실 비스킷 안주 만으로 식사가 될 거 같지 않아 남은 바질로 파스타를 해 먹기로 했다. 


원래 연말에 케이크 만들려고 사둔 휘핑크림 200g이 두 개나 있어서 그걸로 만들기로 했다. 휘핑크림과 바질을 넣고 가는데 바질 양이 적어서 휘핑크림 200g 다 넣지 않고 남은 건 버렸다.  


재료: 휘핑크림, 바질, 소금, 후추, 마늘, 우유, 스파게티 면

올리브오일에 마늘을 볶다가 갈아둔 바질 소스를 붓고 생우유를 조금 더 부었다. 뭉근하게 원하는 양이될 때까지 끓이다가 삶은 면을 넣고 후추와 소금 간을 한다.


그러면 끝이다. 바질 파스타는 처음 만들어서 간은 실패했다. 소금 간을 더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대로 고소하고 맛있었다. 남은 화이트 와인과 함께 잘 먹었다. 


파스타랑 먹을 땐 느끼한 맛을 잡아주려고 와인에 탄산수를 타서 마셨다. 1월 달 내내 여행 가고 놀고먹기만 해서 체중이 말도 못 하게 늘었다. 운동해서 겨우 뺀 게 도루묵 된 느낌이랄까. 어쩌겠나 다시 해야지.


https://on.soundcloud.com/bPyXq

요즘 자주 듣고 있는 곡이다. 가사도 그렇고 멜로디도 그렇고 특히 이케 목소리는 듣다 보면 힘이 나는 목소리다. 가사가 나만이 나를 만들 수 있다면서도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함께 울고 웃으면서 미워해도 사랑하며 살아가자 외치는데 힘이 안 날 수가 없지.


친구와 여행하면서 많은 얘길 했는데 어릴 때 친구라 참 많이 달라졌다 싶으면서도 이렇게 익숙한 건 세월이 주는 힘을 무시할 순 없구나 싶기도 했다. 몰랐던 부분도 알게 되었는데 결국 사람과 사람은 얼마큼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느낀 건 친하다고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는 것. 가끔 만나 함께 울고 웃으며 얘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 별미를 먹으면서 세상이 조금 행복해지는 것처럼.





토스티 모스카토 블랙 에디션 와인

★★★☆☆

트러플헌터 레다 모스카토 다스티 와인

★★★★★

바질 비스킷 안주

★★★★★

바질 파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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