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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볼파란 Feb 16. 2024

새해맞이 온몸 기름칠과 팔 빠진 머랭 치기

여덟 번째 사투

명절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우리 집은 대부분 명절 음식도 패스하고 만다. 귀찮기도 하고 배달 음식을 편하게 시켜 먹을 수 있으니 굳이 손품 들여가며 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엄마도 나이가 드시니 이젠 음식 하는 걸 좋아할 리 만무하고 딸들이라고 해봤자 자기 손으로 반찬 하나 안 해 먹는 인간들이니 손수 나서서 할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이번 명절에는 어찌 된 영문인지 동생이 나서서 음식을 하겠다고 했다. 집안일을 결정하는 데 있어 내 서열은 꼴등이라 한 살 차이 나는 언니라고 해도 맏이 자리는 일찌감치 동생한테 주었으므로 나는 순순히 따른다. 이건 마치 성경 속 에서와 야곱의 이야기 같군. 그렇다고 한들 난 에서처럼 장자의 자리를 내줬다고 화도 내지 않는다. 그런 거 다 가져가.


서로 좋아하는 음식을 선별해서 산적과 동그랑땡, 그리고 잡채를 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서 점심 전후까지 거의 반나절을 앉아서 전만 부쳤다. 온몸에 기름칠을 뒤집어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이 짓을 결혼한 사람들은 시댁에 가서 매년마다 하는 것인가. 요즘엔 많이 달라졌다는 데 결혼한 지 15년이 훌쩍 넘은 친구는 여전히 꼼짝없이 시댁에 내려가 음식을 하는 걸 보면 달라졌다는 것도 케바케인 것 같다. 


나는 고기를 더 선호하지만 동생은 햄을 더 좋아한다. 산적은 부치면서 거의 다 먹은 것 같다. 아니 음식 하는 사람 대부분은 기름 냄새 때문에 먹기도 싫다는데 왜 나는 먹으면 먹을수록 맛있는 거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가서 그만 좀 먹으라고 말렸다. 

잡채는 엄마의 고유 영역이다. 잡채만큼은 엄마가 해주는 게 맛있다. 이번 잡채는 간은 잘 맞지만 다소 면이 많이 삶아져서 퍼졌다. 엄마도 나이가 드는 걸 느끼는 게 손맛이 예전과는 달리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맛있다. 엄마는 잡채 한 번 하고 나서 다시는 명절 음식 안 하겠다고 했다. 엄마가 계셔도 우리가 이걸 할지 모르겠다. 

호불호 없는 동그랑땡. 반죽을 내가 해서 모양이 들쑥날쑥이다. 나는 성격이 급하고 손이 빠른 편이라 일은 후딱 하는데 섬세하지 못하고 덜렁대기 일쑤다. 동그랑땡은 어려서 큰집에 들락거렸을 때 많이 먹은 거라 먹을 때면 그때 기억이 떠오른다. 큰집에선 꼭 녹두전도 같이 했는데 녹두전이 그렇게 맛이 있어서 야금야금 부엌에 나가 먹다가 혼난 적도 있었다. 녹두전을 가끔 해먹기도 하는데 어렸을 때 맛이 나진 않는다. 생각해 보면 맛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추억에 의해 왜곡되어 있는 것 같다. 

기름진 음식을 모엣샹동 임페리얼 샴페인과 함께 마셨다. 선물로 들어왔는데 우리 집에선 나 말고 아무도 술을 안 마신다. 열 때부터 탄산감이 장난 아니다. 전과 함께 먹으니 딱 좋다. 다만 도수가 꽤 높아서 한 병을 혼자 다 마시고 나서 술에 취했다. 

낮술은 부모도 못 알아본다는데 엄마 앞에서 재롱부리다가 등짝을 세게 한대 얻어맞고 방으로 들어와 그야말로 뻗었다. 술 마셔도 잠자는 버릇은 없는데 나이가 드니 취하면 무조건 뻗는구나. 웃긴 건 이 와인이 선물로 많이 주고받는 것인지 검색어 1순위가 가격이더라. 크큭. 어떻게 아냐고? 나도 검색해 봤거든.

 

또 다른 날, 원래 연말 케이크 만들려고 사둔 휘핑크림이 있어 충동적으로 케이크 만든다고 설레발쳤다. 하면서 알았다. 망했다는 걸. 머랭 치기 하다가 죽는 줄 알았다. 가뜩이나 오른쪽 팔에 통증이 있는데 미친 듯 머랭 치다가 팔이 아예 안 올라갔다. 머랭을 한 번만 친 것도 아니고 빵 만들 때도 쳐야 해서 두 번이나 쳤다. 욕이 절로 나왔다. 


빵을 먼저 만들었는데 빵 만드는 건 이미 지난번에 올려서 사진은 따로 찍지 않았다. 급하게 만드니 잘 만들던 빵도 실패했다. 밑이 다 타고 원하는 만큼 부풀어 오르지도 않았다. (젠장) 그래도 급한 대로 휘핑크림에 설탕 넣고 머랭 쳐서 쫀쫀한 크림을 만들어 본다. 


빵은 냉동실에 넣어서 급속 냉각시켰다. 식은 빵 위에 생크림을 동그랗게 발라서 대략 케이크 비슷한 모양이라도 내려고 했으나 빵 만들기도 실패해서 조각 케이크로 변경했다. 빵을 대충 잘라서 크림을 바르고 올려서 다시 크림을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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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가 궁금하겠지?)


음.. 뭔가 잘못됐다. 내가 원한 모양은 이게 아닌데...

데코 할 과일조차 냉장고에 없다. 블루베리나 딸기라도 사둘 걸. 올려놓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이럴 땐 먹지 않고 얼려뒀던 블루베리조차 안 보이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새해 케이크라고 엄마한테 먹기를 강요했다. 대부분 맛있다고 먹어주는 엄마가 먹는 도중에 이게 대체 무슨 맛이냐고 물었다. 잘 안 넘어간다고 해서 커피를 내려줘서 간신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근데 왜 난 그런대로 먹을만했지? 진짜다. 맛있진 않아도 빵과 크림조합이니 괜찮잖아? 응?


이쯤 되니 내가 맛없다고 하면 얼마나 맛이 없는 건지 알겠지.

사진 찍는 게 너무 귀찮아서 언제까지 올리지 모르겠지만 요리하는 걸 정리하면서 알게 된 건 내가 손이 빠르고 닥치면 뭐든 하긴 한다는 거다.(여기엔 안 올렸지만 반찬 만들기도 해봤다.)


1월 내내 여행도 두 번이나 다녀오고 닥치는 대로 먹어서 살이 많이 쪘다. 물만 마셔도 살이 쪄서 내 몸이 무서울 정도다. 운동샘은 200회 나왔다고 편지도 써주고 선물도 줬는데 몸무게 변화가 하나도 없어서 민망할 지경이다. 200회 동안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기만 했을 뿐. 


괜찮다. 아직 2월이라 2024년은 시작도 안 했다. 모두 알잖나. 3월부터 시작이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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