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쟁이를 맡기면 벌어지는 일
집에 갈 때 마다 혹은 가끔 아빠가 없을 때, 엄마한테 전화를 하면 아빠 때문에 속상하고 화난다고 이따금씩 푸념을 한 바가지씩 들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중학교 때, 은퇴를 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했지만, 바쁘게 살던 때 보다 점점 사이가 나빠지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딱히 힘들게 일할 것도 없는 분들이 왜 그럴까 했지만, 뭐 내가 노력한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니, 난 그저 엄마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역할을 다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를 출산을 준비할 때, 한참 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출산 후, 휴가도 집에서 보냈다. 돌아갈 날짜가 다가오는데, 우한 사태가 터져서 갓난쟁이 비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혼자 비행기를 탔다. 한 5개월은 그렇게 엄마 아빠가 둘째를 키웠다. 나보고 아이를 못봐서 어쩌냐 엄마는 매일 안타까워했지만 사실 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 아빠가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아이를 못봐서 울거나 마음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은 아이가 말을 못하고 교류가 적었으니, 큰 감정이 생기지 않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비자 제한이 풀려서 아이를 데려왔고, 엄마는 몇 날 몇일을 우셨다고 한다. 지금도 아이를 맡아서 키우던 때 이야기를 엄마와 아빠가 종종 하신다. 그 때 정말 행복했다고, 바쁘고 할 일은 많았지만 서로 도와가며 아이를 돌보던 때 오히려 엄마 아빠 사이가 좋아졌다고, 아이를 돌봐주는 아빠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고..나로써는 머리로는 이해하려고 하지만 마음으로 이해가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는데 나는 상대방이 어떤 도움을 주는지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랑 함께 하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갓난쟁이 였을 때는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엄마 아빠는 그런 세세한 것들을 마음 가득히 느꼈던 것 같다. 옥시토닌의 힘일까? 아니면, 엄마 아빠의 역할을 다시 하면서 그전에 나와 동생을 키우던 때 지나쳤던 기쁨들을 하나 하나 느낄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 할머니랑 보낸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우리 애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다. 그 덕에 나는 종종 할머니 집에 아이들을 맡기고 몇 일 씩 나가 있어도 아이들은 행복하게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을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는 엄마 아빠에게 너무나 감사하다. 그리고 한 편으로 또 갸우뚱하다. 아이들이 그렇게 좋을까? 나처럼 혼자 있고 싶고, 더운데 달라붙는 아이들이 귀찮치는 않을까? 내가 가진 사랑의 깊이는 아마도 엄마 아빠가 가진 것에 비하면 아주 미천한 수준인 것 같다. 그리고 이 수준 차이는 아마도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누구랑 있으면 어떤가 아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면 되지 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