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시원한 여름밤
교과서에 늘 적힌 우리나라의 좋은 점, 사계절이 뚜렷하다. 너무나 많이 반복되는 말이여서인지, 아니면 태어나보니 사계절이 뚜렷한 환경이어서 인지, 아무 감흥이 없었다. 그 후로, 여행으로 또 이주하면서 몇 나라 지방을 살아내 보니, 뚜렷한 사계절이라는 게 대체 무슨 의미 인지 알게 되었다.
그게 왜 장점인지는 일 년 내내 여름만 계속되는 싱가포르나 여름에는 밤에도 딤섬 찌는 대나무 바구니에 있는 것 같은 심천에서 살다 보면 이해가 간다. 날씨가 온화하지만 난방이 썩 시원치 않은 호주의 겨울을 지내거나 온도는 낮지 않지만 관절에 스며드는 겨울 날씨의 상하이에서 지내다 보면, 아주 차갑지만 따뜻한 방바닥이 있는 한국의 겨울이 그립다.
그 뚜렷한 사계절 중에서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밤이다. 따갑게 햇살이 내리쬐는 여름의 낮도 생기가 넘치지만, 열기가 한 김 식고, 가끔 시원한 바람도 불어주는 여름밤은 그 어떤 날씨나 계절 중에서도 제일인 것 같다. 귀뚜라미, 풀벌레 소리까지 들린다면 그 순간이 최고다. 제주의 여름밤엔 구슬이 굴러가는 신기한 소리를 내는 벌레도 있었지.
지금 상하이는 무더운 여름이지만, 오늘 밤엔 태풍이 곧 온다고 해서 인지 시원하다. 아주 꼭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한국의 여름밤 같은 느낌이다. 지금 이 밤을 이대로 통째로 유리병에 넣어 놓고 싶다. 나중에 또 찌는 듯한 습도가 높은 밤이 찾아오거나, 기분 나쁘게 추운 겨울밤이 오거나 할 때, 삶의 생기를 조금 잃어버리는 날이 올 때, 이 밤을 꺼내서 그 안에 앉아있고 싶다. 지금 이 느낌 그대로 풀벌레 소리도 살랑 부는 바람도 틀어놓은 플레이리스트도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모습도 그대로 넣어 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