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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여우가 가르쳐준 것

어린 왕자를 통해 발견한 치유의 여정

by 부소유

늦가을 저녁, 도서관 강의실에서 나는 44세에 생을 마감한 한 비행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불문과 교수님의 목소리는 때로는 1940년대 사하라 사막 상공을 떠도는 경비행기의 엔진 소리처럼, 때로는 뉴욕 맨하탄의 외로운 작가의 한숨처럼 들려왔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어두운 밤길을 걸으며, 나는 마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읽은 사람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생텍쥐페리가 1943년 뉴욕의 작은 방에서 써 내려간 <어린 왕자>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44세 어른이 자신의 내면에 있던 아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였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10년 전 광화문 현판에 걸렸던 파블로 네루다의 시구를 인용하셨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이 물음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이어서 스마트폰 화면에 얼굴을 묻고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 카페에서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각자의 화면만 바라보는 연인들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생텍쥐페리가 사막에 불시착했을 때 느꼈던 고독과 우리가 지금 느끼는 고독은 어떻게 다를까. 그는 적어도 별을 볼 수 있었고, 사막 여우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손 안의 작은 화면에 갇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조차 만나지 못한다. 교수님이 제시한 통계가 충격적이었다. 하루 평균 48명.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이들의 숫자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이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가장 고독한 시대를 살고 있다.


강의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생텍쥐페리와 그의 부인 콘수엘로의 이야기였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받았던 두 사람. 어린 왕자의 장미가 까다롭고 변덕스러웠던 것처럼, 실제 생텍쥐페리의 결혼 생활도 그러했다. 하지만 결국 그가 깨달은 것은, 그 모든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돌본 장미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는 진실이었다.


네가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것은 네가 네 장미를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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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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