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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가 들려주는 이야기, 그리고 전쟁의 비극

by 부소유

도서관 강의실을 나서며 머릿속이 복잡했다. 두 시간 남짓한 러시아 전공 교수님의 특강이었지만, 천년의 러시아 역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 느낌이었다.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 이 두 도시를 축으로 진동해온 러시아의 역사는 단순한 수도 이전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고, 동과 서 사이에서 방황하는 영혼의 기록이었다.


러시아가 몽골의 지배를 받으며 받은 거대한 트라우마. 240년간의 지배, 우리가 일제강점기 35년을 아직도 아파하는 것을 생각하면, 그들이 받았을 상처의 깊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상처가 역설적으로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민족 통합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고난이 때로는 한 민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는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표트르 대제가 늪지대에 건설한 페테르부르크의 이야기는 극적이었다. 유럽을 향한 창을 열겠다는 일념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곳에 도시를 세운 그의 의지는 놀라웠지만, 동시에 폭력적이었다. 수염을 자르라고 명령하고, 유럽식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고, 갑작스럽게 무도회를 열어 귀족들의 딸들을 데려오게 한 일화들은 웃음이 나오면서도 씁쓸했다.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그 모든 강압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급진적 개혁이 없었다면 러시아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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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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