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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by 부소유

벚꽃이 만개한 4월의 어느 날이었다. 은지가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어머니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 은지야, 고모가 이혼한대. 지금 우리 집에 와 있어.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은지는 놀랐다. 이혼은 드라마 혹은 영화에나 나오는 남의 이야기 인줄 알았다. 고모부는 대기업 부장이었고, 고모는 전업주부로 강남 아파트에서 떵떵거리며 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준호의 교육에 아낌없이 투자하고, 매년 해외여행을 가고, 백화점에서 쇼핑하는 그런 삶. 그것이 무너졌다는 말인가.


집에 도착하니 거실이 어수선했다. 고모가 소파에 앉아 울고 있었다. 평소의 화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화장이 번진 얼굴, 구겨진 옷, 헝클어진 머리. 할머니는 고모 옆에 앉아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 괜찮아, 영희야. 다 잘될 거야. 어머니가 은지에게 조용히 설명했다. 고모부가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었다. 회사 후배와 2년째 불륜 관계였고, 최근에 그 여자가 임신까지 했다고 한다. 고모부는 이혼을 요구했고, 재산 분할도 최소한으로 하겠다고 통보했다. 고모는 충격에 빠져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있었다.


고모가 흐느끼며 말했다. - 언니, 나 어떡해요? 20년을 바쳤는데. 그 사람 뒷바라지하느라 내 청춘 다 바쳤는데. 어머니는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그저 물만 가져다주었다. 아버지는 불편한 듯 밖으로 나갔다. 민수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은지는 고모를 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평소에 그렇게 우리를 무시하고 자랑하던 고모가 이제 우리 집 좁은 거실에서 울고 있다. 13층 아파트에서 반지하로 내려온 것이다. 하지만 은지는 고소하다는 감정보다는 씁쓸함을 더 크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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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처럼 살고 싶지만, 현실은 이방인의 뫼르소 처럼 살고 있습니다. 싯다르타 처럼 속세를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은 호밀밭의 홀든 콜필드 랍니다. 뭐 그럼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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